그 여자네 집-김용택

바다가는길 2006. 3. 3. 22:17

1

 

[도서] 그 여자네 집

사람은 무릇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곳에서, 그런 것들에 싸여, 그런 것들을 마음에 담고, 그런 것들을 눈에 들이며,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여기에 없는 것들이 거기에 다 있다.

찾아가 깃들고싶은 마음동네.

 

 

눈 오는 집의 하루

 

 

아침밥 먹고

또 밥 먹는다

문 열고 마루에 나가

숟가락 들고 서서

눈 위에 눈이 오는 눈을 보다가

방에 들어와

또 밥 먹는다.

 

 

 

봄 옷 입은 산 그림자

 

 

그저께 엊그저께 걷던 길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저께 엊그저께 그 길에서

어제 듣던 물소리

오늘은 어데로 가고

새로 찾아든 물소리 하나 듣습니다

문득 새로워 걷던 발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 기울여봅니다

아, 그 물소리 새 물소리

봄 옷 입은 산그늘 강 건너는 소리입니다.

 

 

 

하루

 

 

하루 종일 산만 보다 왔습니다

하루 종일 물만 보다 왔습니다

환하게 열리는 산

환하게 열리는 물

하루 종일 물만 보다 왔습니다

하루 종일 산만 보다 왔습니다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 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 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 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 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 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