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
장 그르니에, 그에 대한 인상은 조용하고 명상적인 학자풍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단정한 학자라기보다 낡은 외투에 먼지 낀 구두를 신고 덥수룩한 머리칼 바람에 날리며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 순간을 사는 몽상가의 인상이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인. 그를 스승으로 삼은 까뮈와 많이 닮은 모습.
하나의 풍경으로부터 끌어올려지는, 길어올려지는 그 맑은 언어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결같이 빛나고, 보이지 않아도 멀리 퍼지는 꽃향기같이 그윽하다.
공감하며, 마음을 끄덕이며, 그 끄덕여지는 부분 다시 한 번 읽으려고 늘 하듯 책갈피를 접다 아예 한 번 더 읽을 만큼 아름다운 글.
항상 그 앞에 서서 그저 감탄만 할 뿐,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그 느낌들을 그는 그다지도 유연하게 표현한다.
'나는 때때로 내 삶을 초월한 영혼의 상태를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영광이란 것은 아무 것이 아닐지도 모르고 행복이란 것 역시 무슨 소용이 있으랴-플로베르'
'작업의 무익한 시간을, 게으름의 생산적 시간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고, 잊어야 했던 시간을 생각했다. 행동하는 것과 아는 것.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행동하고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빛의 발자취가 당신의 뒤에서 작고 희미하게 즐거운 소리를 내며 다시 닫힌다.
사람들은 삶의 근원에 가까이 있음을, 솟구치는 맑은 물에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영원한 새로움이고 마치 새벽이 꽃 피듯 열리는 것과 같다.'
'산타크루즈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가보면, 사람들은 자신을 사로잡는 거대한 정적을 느낀다.
나는 기쁨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의 숨가쁜 고동소리가 가라앉은 후 숲의 넓고도 깊은 숨소리를 들었다.
처음에 꽃다발처럼 묶여있던 우리의 사고가 행복하게 꽃처럼 피어난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은 아닐까.'
'취기, 바로 그것을 알면서 취해서 걷는다.
목표를 향해 똑바로, 자연과 정신이 서로 안을 때 까지'
'식물의 삶이 그렇듯이, 느리고 기지개를 켜듯이 조금은 늘어진 그런 삶이 모든 삶 중에서 특히 시에 어울리는 삶'
'가장 처음 떠오르는 태양빛이 이슬을 마시듯'
'물, 구름들, 침묵, 밤, 샘물소리, 별들이 반짝임, 대리석과 물의 서늘함'
'Dar Zarouk의 밤을, 달이 바다 위로 거품을 일게하듯 빛을 뿌리는 수정같은 그 밤들을 기억하길.
그토록 많은 폐허 위에, 그토록 많은 추억 위에, 그토록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 위에, 그토록 많은 희망 위에 시간은 멈춘다.
두 눈에 마음 속에 모든 형태를 담고있는 이 풍경으로부터 무엇인가가 은은하게 퍼진다.
하지만 이 <무엇>이란 무엇인가?
감히 그것에 이름 붙일 수 없다.
그토록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아무도 듣지못했던 어떤 목소리인가?
그 풍경 속에서, 그 풍경과 닮은 어떤 것에서 그처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당함? 청정함? 조화로움?
우리가 이따금 손에 넣었다고 믿는 이 절대의 감정, 삶의 이 충만함은 비어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소중히 아껴온 어느 꽃병에서 풍기어 나오는 향기이리라.
그 모습이 아니라 그 어둠이리라, 목소리가 아니라 메아리이리라'
'내부의 신비를 감추고 있는 연약한 얇은 그 막이 터지는 그런 순간, 그 슬픔의 밑바닥으로부터
노래 한가락이 터져나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처럼 가난과 질병과 고독과 낯섬이 우리를 내몰았을때, 우리의 영원은 우리에게 또렷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참호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어야 한다.'
'어느 날인가 나는 더이상 이치를 따질 수도, 기억할 수도, 쓸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어떤 이미지들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나는 더이상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했고 어떤 것에도 더이상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어떤 리듬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아주 어두워져서야 집 밖으로 나온다. 나의 빛은 바로 어둠 속에 잇고, 나의 밤은 바로 그 빛 속에 있다'
'심장을 고동치게하고, 감미로운 불안을 주고, 오래 지속되는 쾌락을 주는 그런 풍경, 강가의 돌들, 찰랑거리는 물소리, 경작지에서 솟아오르는 미지근한 열기, 지는 해의 구름, 이런 것들과 함께 나누는 애정'
'인간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또 자신에게 그의 모든 운명을 걸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무시해야 한다'
'깊이로 인해 가벼워지는 것'
'대자연 속에는 일순간의 정지가 있다.
살아있는 존재들의 성급한 질주의 한가운데에서, 나무는 하나의 정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한 번의 한숨이다.
둥글게 뭉쳐진 듯한 숲의 꼭대기를 바라볼 때 그때 내 몸을 감싸는 그 즐거움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바닷가 모래언덕의 소나무들, 잎사귀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는 것, 흠 하나없이 완벽해보이는 하나의 풍경을 그 커다란 줄기로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는 것, 진정한 행복...
나무는 풍경을 길들인다. 나무들은 대자연이 비밀리에 지배하고 있는, 분리될 수 없는 삶 속으로 단숨에 나를 옮겨놓는다. 나는 표현할 수 없음의 세계, 이미 회전을 마친 세계로 스며들어간다.'
'수많은 결정면을 가진 대자연이라고 하는 이 다이아몬드'
'애벌레가 껍질을 벗듯, 인간은 껍질을 벗기 위해 창조적 작업에 몰두한다'
'늘 바라보던 것을 어느 날 발견한다.
서로에게서 아득한 숙명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우정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에게서 감지할 수 있는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대자연, 더없이 즐겁게 추락하는 하나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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