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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생인 그의 20대에서 30대까지의 초기작품들.
그 어린 나이에, 그 별로 살아보지도 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깊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는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는 단 한가지 주제, 삶, 그리고 죽음.
그 서로 꼬리를 물고 도는 뱀, 그리고 그 원 안에 소용돌이치는 존재의 혼돈.
그는 엉크러져 뭉쳐있는 듯한 실꾸러미를 정연히 풀어낼 수 있는 실끝 하나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 느낌은 오관에 의한 것이기보다 깊숙한 곳에 잠자고있던 혼의 촉수로써 닿아진 것'
'혀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말'
'큰 나무 꼭대기의 마른 잎이 떨어져 땅에 와닿을 만큼은 어느 쪽에서도 말이 없었다. 그 시간은 천 년의 적막이 한 마른 잎에 축적되었다가 날라져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해가 각혈을 하며 바다를 붉게 물들이더니 기진되어 바닷 속에 익사되려고 하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그곳으로부터 불어왔는데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부자나 거지나, 학대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의 옷을 벗겨 본래의 것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뭣이 있었다'
'죽음 속으로 용감히 걸어가는 목숨냄새, 삶 속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죽음의 냄새.'
'나는 어떤 이끌어주는 것에 의해 계속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스러져버리는-그리고 그 전이로서 사는 것이다.
여자와의 교미도 그렇고, 갈증도 그렇고, 할 일 없어 지루한 시간도 그렇고, 신열이니 오한도 그렇다.
아침에서 저녁까지로 끝나버리는 어떤 촌락의 장날과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그것도 그런 것이다.
나타나는 꼴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저기로 떠도는 장돌뱅이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 수 천 개의 장날을 살고 지닌 한 집단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여러 수 천 개가 더 쌓일 것이고, 그것들을 지니고 있으며 계속 더 지니게 될 나는 그렇게 해서 그것들 위에 떠돌고 있는 그런 어떤 놈이 되었다'
'밭은 황혼과 섞여 미적지근히 붉고, 바람이 먼지를 쥐어다 뿌렸다'
'장, 온갖 곳으로부터 온갖 잡놈들이, 온갖 잡동사니를 갖고 와 팔고 사고 아우성치는 장 속.
그런 더러운 잡동사니의 혼들이 질서를, 관념형태를 만들어낸다.
깨끗하기만 하고 맑은 것에서는 무엇이 태어나겠느냐? 정말 티없는 물을 아무리 끓여보더라도 거기선 아무 향기도 우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물 속에 장구벌레 한 마리라도 넣고 끓여봐라. 그땐 어쨌든 맹물냄새보다는 멋진 향기가 날 게다'
'차가운 쓸쓸한 하늘은, 정오 부근에서 접시만큼 구멍이 뚫려, 하늘 저쪽의 희디 흰 권태가 엿보였다.'
'겉의 아름다움을 교만하는 자에게 그것이 얼마나 흉칙한 비단자루인가를...'
'회오리 바람이 노가주나무 밑동에서 부스스 일어나 까마귀의 날개를 비틀며 외떨어진 작은 돌집을 향해 달려가더니, 그 벽에다 머리를 짓바수어 자살해버린다'
'어떻게 하여 대지는, 누천년을 살아오면서도 앙금을 남기지 않고, 어떻게 하여 늘 시원으로 환원되는가'
'갈(耕)수 없는 녀석은 필요없어, 갈 수 없는 녀석은 죽어야 마땅하거든, 살아있는 동안은 무엇이든 건강하게 갈아야 한단 말이야, 거기서 잡초가 자란대도 말이다, 잡초가 자란대도 갈아야 하거든, 가는 일을 좀 더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는 것이 사는 일이야, 산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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