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정원-카잔차키스

바다가는길 2006. 3. 4. 22:57
 

 

돌의 정원 - 니코스 카잔차키스전집 7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고려원

고뇌하는 인간, 사색하는 인간, 자신의 모습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인간.

한 마리 애벌레로서 한 쌍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를 꿈꾸는 인간.

고치 속에서 탈출을 부르짖으면서도 탈피의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

인간의 절망됨과 희망됨.

인간이란, 무기물 아니 무기물도 아니었던 그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해 무기물로, 유기물로, 식물로, 동물로,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의 껍질을 벗고 상승하는 어떤 존재의 진화 중의 한 과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딛고 더 높은 존재로 탈피하여 상승할 그것을 위해 길을 닦는 것이 인간의 할 일이다.

'미나 선, 공포의 신기루를 버리고 지고한 현실을 직시할 것, 나를 딛고 상승할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위해 길을 닦을 것, 여하한 경우에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탐구하고 자유로울 것', 그가 내리는 결론이다.

사막과 같은, 꽃도 나무도 없는 적막한 정원, 몇 개의 돌만이 놓인 동양의 한 정원에서 그는 어떤 영감을 받았나보다.

호들갑스러운 인간의 희망이니 절망이니, 선이니 악이니 하는 관념에서 벗어난 고요한 부동의 마음, 아무 관념의 장식없는 돌처럼 굳건한 마음으로, 호랑이가 도주하는 모양이라는 돌처럼 치열한 영혼의 탈출을 꾀할 것.

 

'모든 여행은 자기 영혼의 주위를 도는 일, 영혼의 주위를 돌며 그 안을 기웃거리는 일'이라는 그 스스로의 말처럼 자신의 영혼을 찾아 일본으로, 중국으로 떠도는 이야기이다.

서양인의 관점으로 보는 아주 이질적이고 신비로운, 때론 이해하기 어렵게 비합리적이고 원시적인 동양의 문화들. 그들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 것 같다.

그가 일본을 처음 여행했던 시기는 1935년, 일본이 대동아를 부르짖으며 군국주의에 박차를 가할 때인 모양이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는 시점에서소설이 끝난다.

가면과 이면을 모두 볼 줄 아는 자만이 제 눈을 가진 셈이라고 말하는그이지만, 서구인의 눈에 비친 일본, 중국의 영혼, 핵심을 잘 집어낸 것 같으면서도 그 또한 그 이면을 모두 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일본의 얼굴을 미소짓는 가면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일본인의 공동체성,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식, 개인적 죽음을 초개로 여기는 의식에 경외를 느끼는 듯하다.

아마도 합리주의적인 서구인에겐 없는 것, 서구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었기 때문이리라.

중국은 막 들어와 활개치는 서양자본에 무릎 꿇은 듯 하면서도 언제든 기회만 주어지면 표효하며 일어설 저력을 지닌 땅, 수 천 년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 지혜의 나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의식 어디에도 우리나라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구나)

1935년, 한창 우리가 식민통치 아래 허덕일 때, 그가 신비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본, 그 공동체성이라는 것이 남을 짓누르고 약탈하고 파괴하는 야만성을 지닌 것을 그는 보지못한 것 같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 일본인, 중국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양인으로서 황인종-원숭이 얼굴, 째진 눈-또는 무슨 다른 별의 외계인을 보듯, 동물원의 진기한 동물을 보듯 묘사하기도 한다.

자기를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편견, 오만을 그러나 봐주기로 하자.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인간됨을, 원숭이 무리를 박차고 일어 선 인간만의 권리, 의문을 갖고 고뇌하고 탐구할 권리를 충분히 활용한 사람이므로...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자 무진 애를 쓰는 아들처럼, 신이 만든 세상을 그만큼 잘 언어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온갖 은유와 직유로 빚어진 문장들이 참 아름다왔다.

오랫동안 열심히 삶을 성찰해 온 사람만이 쓸 수 있을 그런 문장들.

 

 

'태양에 몸을 데운 작은 곤충의 행복과 같은, 깊고 깊은 무언과 부동의 행복.

 만족과 은혜를 모르는 내마음이여, 이 밖에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가면 밖에 못보는 자에게 화 있을 진저.

 가면의 배후에 숨겨진 것 밖에 못보는 자에게 화 있을 진저!

 동시에 더없이 아름다운 가면과 그 가면의 배후에 숨겨져있는 무서운 얼굴을 보는 자만이 나무

 랄 데 없는 제 눈의 주인인 것이다'

 

'꽃의 꿀을 찾아 모든 정원을 뒤지고 영혼에 그 꽃가루를 묻혀나오는 일'

 

'우리는 하나의 어두운 심연에서 온다. 우리는 하나의 어두운 심연에 도달한다.

 이 두 심연사이의 공간, 우리는 그것을 삶, 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의무는 삶과 죽음의, 이 두 무서운 비약을 종합하고 조화시킬 비전을 파악하는일, 그리고

 이 비전에 따라 우리의 사상과 행동을 다듬는 것.

 끈기있게, 용기있게, 위험한 어둠 위에 튼튼하고 빛나는 정신의 제국을 구축하는 것.'

 

'두뇌-명석하나 절망적인 내 눈은 우주를 응시한다. 삶이란 내 육체 속의 다섯 배우가 연출하는

 놀음이며 연극이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내게는 자기가 보는 것을 진

 실로 받아들이고 무대로 달려나가 그 피투성이 희극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소박한 마음이 없

 다. 나는 오감의  십자로에 앉아, 생겨나면서 소멸해가는 세계를 자기 내부로 응시하고 허무의

 다채로운 골목에서 꿈틀거리고 절규하는 군중을 응시하는 수행승이다.

 마음-나는 무대로 달려나가 세계의 보조에 참가한다. 나는 추측도 하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고,

 복종도 하지 않는다. 나는 비약도 하지 않고 욕망에 그대로 복종한다. 나는 외치고, 묻고, 어둠에

 몸으로 부딪쳐간다. 우리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지상에 우리를 내던진 것은 누구인가? 나는 연약

 한 찰나적 존재이며, 진흙과 꿈의 반죽이다. 그러나 내 내부에서 '우주'의 모든 힘이 선회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이 나를 분쇄하기 전에, 눈을 뜨고 그 힘을 보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 생존의 유일한 목표이다. 병이나 추악함이나, 부정이나,죽음의 무서운 광경을

 참기 위해서라도 나는 사는 이유를 알아야겠다.'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과 정신이란 서로가 서로를

 추구하는, 포옹하고 함께 사라져가며 <나에겐 이 광경이 마음에 든다>고 소리치는 유령이 아니

 냐?'

 

'가면은 서서히 얼굴이 되고 처음엔 형태에 지나지 않던 것을 실질로 변용시킨다.'

 

'여행이란 자기 영혼의 주위를 도는 일. 세계의 끝에 이르러도, 세계에서 가장 진기한 나라에 가

 더라도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 왜냐하면 여행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한계가 있는 자기정신의 욕구와 호기심에 가장 적합한 것 뿐이기 때문'

 

'어느 아침, 벌거숭이에다 뿔도 이빨도 없는 무방비상태에서, 그 넓지만 부서지기 쉬운 이마 속에

 다 신비로운 불꽃을 감추고 홀로 원숭이의 무리 속에서 빠져나온 인류를 가엾게 여겨야 한다.

 인간을 응시할 일이다. 인간에게 연민을 가질 일이다. 생의 박명 속에서 우리는 서로 접촉하고

 묻고 귀를 기울이며 구원을 외치고 있다'

 

'눈과 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현세라는 이 몽환극을 구경하고 듣는 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달리며 좌우로 탐욕의 시선을 돌리는 것은...'

 

'아, 일체의 존재가 그 한 순간에 소리없이 내 두개골 속에서 작열한다. 마음의 이러한 섬광, 우리

 는 그것을 응시하고 고정시켜 인간의 언어로 응축시킬 필요가 있다. 일체를, 과거와 미래를 포함

 하는 이 순간의 영원을 고정시키고, 경직된 언어 속에서 고스란히 사랑의 선회를 끝마칠 수 있도

 록. 황홀한 순간에 느낀 것은 결코 가두어둘 수 없는 것이다. 우화와 각운, 직유와 암유, 진기한

 말이나 비속한 말로, 절규나 웃음이나 탄식으로 그대의 황홀한 순간에 하나의 육체를 부여하도

 록 노력하라. 위대한 <황홀한 존재>인 <신>이 하는 일도 바로 이것이다. <신>은 말하고, 또 말

 하려고 노력한다. 색채와 각과 호를 이용하여, 나무와 잎과 꽃과 과실을 이용하여, 우주를 창조

 하는 것으로 <신>은 항상 자기의 황홀한 순간을 고정하려고 한다.'

 

 '초월을 자기 내부에 갖지 못한 인간? 그런 인간은 배설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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