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리고 기억함

영월 동강

바다가는길 2006. 3. 28. 18:38
1. 

영월 동강, 절매

밤이면 동강에선 어둠이 차올라 산이 된다.

아직 잠들기 싫은 영혼들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

이따금 지친 영혼이 하얀 날개를 끌고 점프, 어둠에 몸을 감추기도 한다.

칠흑같은 밤, 해 저물어 다물어진 꽃봉오리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천천히 젓는 노에 철렁거리는 느린 물소리를 들으며 강을 건널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찰캉찰캉 빛나는 별들.

이게 무언가, 무엇이길래 마음이 떨리도록 아름다운가.

너의 사대와 나의 오감이 만나 이루는 이 세상, 어쩌면 실체가 없는 신기루같은 환상일지도 모르는 세상, 일지라도 오감에 당분간 나를 맡기고 네가 부르는 침묵의 노래에 내 귀를 다 열고 너에게로 간다, 네가 펼쳐놓은 어둠에 나를 묻는다.

2.

강은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잠에서 깨어날줄을 모르는구나. 밤새 드리운 잠의 휘장을 걷을줄 모른다.

바람에 살풋이 흔들리는 하얀 베일들이 아침 강의 얼굴을 가리고있었다.

그 휘장 너머 어디선가 보이지않는 곳에서 새가 울고 물이 흘러가지만 안개에 가려진 세상은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아마도 옛사람들은 그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 속을 더듬어 배를 저으며 죽음을, 이 세상이 아닌 어떤 다른 세상을 상상했었나보다. 죽음이 영혼이 강을 건너는 일로 상징되는 것이 비로서 이해가 될 것같다.

안개에 싸인 텅 빈 강가, 어느 낯선 별에 홀로 불시착한 것같다.

3.

드디어 부시시 일어난 산과 강.

바닥이 투명히 비치는 맑은 강은 우뚝 솟은 절벽같은 산을 따라 흐르고있다.

길이 구비 돌며 만드는 산의 중첩과 강의 곡선,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다른 풍경이다.

사람 하나없는 호젓한 길, 눈부시다. 동강의 아름다움에 자주 멈추어 휘돌아보며 그 강을, 그 산을 기억 속에 각인시키려 애쓴다.

4.

고마루. 산 너머 금수암.

산중턱 자연동굴인데 입구에 간이숙소처럼 작은 집을 하나 지어놓았다.

백년이 더 되었다는 암자. 그 옛날, 길도 없었을 그 산 속을, 지독한 역마살이 끼어 떠돌지않을 수 없도록 운명지워진 영혼이 아니라면 그 누가 거기까지 찾아가 그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산중턱의 동굴, 전경이 기막히다. 눈 앞으로 끝없이 겹쳐져있는 산등성이들.

인간의 말로 번역해내기가 어려운 정경이었다.

마을까지 내려가려면 거의 45도 경사의 산길,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깔려있는 산길을 한 2,30분쯤은 가야하는데, 그런 곳에 스스로를 격리시킨 사람. 그 스님은 세상에서 멀어져 마음 고요할지...

다시 찾아가래도 길을 알 수없을 깊은 산 속 동굴암자, 그 앞에 제법 널찍히 터가 닦인 마당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했다. 내 평생 다시 여길 올 수 있겠느냐고, 다시 너희를 볼 수 있겠느냐고, 그러니 너희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5.

우리나라가 산이 많은 나라인줄은 알고있었지만 강원도 땅, 특히 영월 쪽 돌아보니 송곳 꽂을 자리도 없어보이게 뾰족한 산들이 꽉 차있다. 그래도 그 산골짜기에 , 사람이 살 것 같지않은 곳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이 살아간다.

풍경으로는 한없이 아름다운 그곳에서의 그들의 삶도 그들 자신에게 그만큼 아름다울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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