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을 달려가 찾아간 거제도.
서서히 걷히는 밤의 휘장 뒤로 내가 처음 본 것은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길게 기지개를 켜며 산허리에 낮게 걸려있던 하얀 구름.
하도 낮게 걸려있어 마치 밤이면 사람의 집에 내려와 잠을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그 집을 나서 하늘로 올라가 본연의 임무를 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제 막 일어나 세수나 하려고 뒷마당으로 나선 것 같은 얼굴.
거제도는 섬임에도 갇혔다거나 좁다는 느낌이 없이 풍요로운 바다와 넓직넓직한 논, 밭들을 지닌 여유만만한 섬.
달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내내, 어버이가 자랑하는 잘 키운 자식들같이 토실토실하고 동그마한 다도해의 섬들이 바다에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도는 해금강과 외도.
한 3시간 남짓의 유람.
해금강의 일부만 돌아서인지 해금강은 내 기대에 못미쳤지만 바다로 들어가서 보는 바다, 배가 달리며 뿜는 하얀 물보라, 날아갈 듯 시원한 바람과 바다냄새, 하늘을 나는 새와 아침햇빛에 은빛으로 고요한 저 먼 수평선...
그래, 이거야, 하는 마음.
외도는 한때는 외로운 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좀 외롭고 싶어할 것 같은 섬.
끊임없이 오가는 유람선이 토해놓는 사람들로 온종일 법석일테니.
한 가족의 노력으로 이룩했기엔 너무 정성이 가득하게 꾸며진 섬이다.
섬을 채우고 있는 각종의 나무와 풀과 꽃들.
모두 이름표가 정성스럽게 꽂혀있다. 마치 조경원같은 분위기.
그 잘 꾸며진 정원너머로, 혹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파도가 와 부딪치는 절벽 저 만큼으로 뻗어있는 바다가 푸르기 그지없다.
그리고 새소리, 울창한 나무 숲에 숨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끊이지 않는 명랑하고 맑은 피리같은 목소리가 바다를 더 푸르게 하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다와 함께 있었던 시간.
얼굴을 맞대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 마음 기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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