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난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

바다가는길 2006. 6. 14. 13:31

“난,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
4代 100년 넘게 한국과 인연… 린튼家 이야기 책 펴내

“지금도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라고 합니다. 제 원형을 키워 준 순천 땅, 순천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뜨거운 정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지요.”

189㎝ 키에 파란 눈, 갈색 머리칼을 가진 인요한(47·미국 이름 존 린튼)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내 피 속에 흐르는 한국인 기질”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보다 호남 사투리를 먼저 배운 ‘전라도 토박이’라 스스로 여긴다. 그 애정을 오롯이 담아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생각의나무)이라는 책을 냈다.


 

“없이 살면서도 한없이 낙천적이었던 사람들, 내 것 네 것 없이 살림을 나눠 썼던 너른 인심, 서양인의 합리적 사고 틀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 씀씀이들…. 제가 한국인에게 진 빚을 갚으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빚 청산’을 얘기하지만 그는 1997년부터 형 스티븐 린튼과 함께 북한 결핵 퇴치 지원사업을 시작, 지금까지 17회나 북한을 방문하며 결핵 검진차량·기초의료 장비를 제공했고 15만여명의 북한 결핵환자 완치에 도움을 준 이다. 일찌감치 응급구조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 현재 전국 소방서·병원에 3000여대가 보급돼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사람들과 더 없는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부모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린튼 가문과 한국과의 인연은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처음 제물포 땅을 밟은 1895년 이후 4대(代)째로 100년이 넘는다. 유진 벨은 미국 출신의 청년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인요한 소장의 조부)을 사위로 맞았고, 윌리엄 린튼은 전주·군산·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중·고교 설립 등 48년간 교육·선교사업을 벌였다. 그의 셋째 아들 휴 린튼(인휴·부친)은 전라·경상도 도서·산간지역에 600여개 교회를 개척했고, 아내 로이스 린튼(인애자·모친) 역시 한국에 만연한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해 35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 북한 의료진들에게 초음파 장비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는 인요한 소장(오른쪽). /생각의나무 제공

순천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인요한 소장의 어린 시절 기억 한 대목. 동네 어른들이 그를 보고 “아따, 이놈 미국 넘 같은디, 때때옷 입어 붕께 솔찬히 이쁘구먼” 하면 소년 인요한은 이렇게 대꾸했단다. “이놈이 머여, 내 이름은 짠(Jonh)이여.” 그러면 어른들은 기가 차면서도 기특하다며 꿀밤을 먹였다.


 

“한국인이 말하는 ‘정’(情)에 딱 들어맞는 영어 단어는 없습니다. 아주 소중한, 그러나 점점 사라져 가는 한국 고유의 특성이지요. 다만 우리 한국인들은 자기 배꼽만 보고 사는 경향이 있어요. 비단 북한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남(다른 나라)을 돕는 훈련이나 사회적 장치가 활발히 마련돼야 합니다. 그게 결국 나 자신을 돕는 것이니까요.”

신용관기자 qq@chosun.com
입력 : 2006.06.13 22:57 52'
 
 
 
활짝 웃는 얼굴, 악의가 하나도 안보이는 얼굴이 너무 아름답다.
'없이 살아도 한없이 낙천적이고, 네 것 내 것없이 서로 나누고 살았다' 던 우리, 그 마음 아직 남아있을까?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사는 곳이 어디이든 '된 인간'으로 사는 게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자기 배꼽만 보지 말라는 말, 새겨들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