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태극 전사들에게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월요일 새벽 치러진 한국 대 프랑스전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는다. 비록 기량은 달렸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앙리나 지단 등 프랑스 선수들의 몸값이 얼마던가. 비록 노쇠했다
해도 아직 리그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하는 스타들이다. 이기진 못했다 해도 굴복하지 않는 우리의 선수들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놀라운 사람들이 있었다. 밤을 새워 우리의 전사들을 응원한 우리 국민들이다. 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 독일에 원정 간 응원단, 해외교민,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응원가를 부르며 한마음으로 승리를 기원했던 우리들. 저마다 ‘붉은악마’라 칭하며 각종 응원도구며 보디페인팅, 붉은 의상을 챙겨 입고, 아침 출근마저 포기하게 하는 그들의 신명은 어디서 오는 걸까.
오래 전 고조선 이래로 우리의 부여나 고구려에서는 ‘영고’ 혹은 ‘동맹’이라는 카니발이 있었다. 농경 사회로 진입한 그들은 추수를 마치고 제천행사와 더불어 며칠 동안 계속 마시고 춤추고 놀았던 것이다. 동맹이란 한자로 동맹(東盟)이라 적지만 이는 ‘동매’ 즉 ‘동여매다’라는 뜻의 우리 옛말을 이두체로 표기해 놓은 것이다. 단결, 결합의 뜻이다.(이영희 ‘노래하는 역사’)
오랫동안 우리에겐 없었다. 왜냐하면 농경사회가 끝났기 때문이다. 산업사회 이후 우리가 성취한 결과를 한자리에 모여 ‘동여매는’ 일은 없었다. 그저 각자의 성과를 즐길 뿐이었다.
2002년 이후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동매’를 경험하게 된다. 4년에 한번 찾아오는 월드컵에서 세계인이 놀란 영고제를 열었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의 핏속에서 흐르던 신명이 깨어난 것이다. 그것이 새벽 4시에도 수십만의 군중이 모여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나는 최근에 모 방송국의 특별편성 다큐멘터리의 음악을 맡고 있다. 극동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 우데게족과 나나이족을 소개하며 왜곡된 우리의 만주사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데게 등은 오래 전 말갈족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고유의 노래와 풍습이 전해진다. 몽골어로 우데게란 자궁을 뜻한다. 즉 어머니의 대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아직도 이들은 수렵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산다. 그들의 얼굴은 우리와 닮았다. 노래까지 우리 고유의 3박자 장단과 가락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오랑캐라고 부르던 그들은 놀랍게도 곰과 호랑이의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고구려 발해의 후손이라고 한다.
말갈과 여진 등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오래 전 추수 때면 영고와 동맹을 치르던 우리네 형제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상고시대 조선에서 갈라져 조선, 선비, 흉노, 몽골, 돌궐, 거란 등이 되었고 극동에서 유럽까지 세계를 다스렸다. 원래 유목민에게는 경계선이 없다. 초원을 향해 흘러 흘러 좋은 곳에 깃발 꽂는 곳이 영토다. 오래 전 집단 가출한 한 무리들 중에 돌궐은 튀르크 즉 터키가 되었다. 터키를 우리의 형제라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다. 로마를 멸망시킨 흉노라 불리던 훈족은 훈가리, 지금의 헝가리가 되었다. ‘훈가리’의 ‘가리’란 몽골어로 ‘나라’다. 이는 우리말 ‘한겨레’가 아니던가. 몽골은 세계를 정복했고
여진은 금(金)을 세우고 중국의 청나라가 되었다. 조선은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바로 천하를 호령하던 자랑스런 오랑캐다. 오랫동안 중화주의와 식민사관에 익숙해져서 우리들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를 빼앗아 갔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와야 할 것이 고구려, 발해뿐만은 아니다. 세계를 상대로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역사도 이제는 한반도에서 벗어나자. 붉은악마의 상징인 고조선의 전신(戰神) 치우천왕은 도깨비가 아닌 사람이었다. 신대철 · 음악인
입력 : 2006.06.21
|
'스크랩-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경 - 도종환 (0) | 2006.07.07 |
---|---|
언젠가 한 번 읽을 책들 (0) | 2006.07.01 |
[조선데스크] 토고선수들의 슬픈 눈빛 (0) | 2006.06.15 |
"난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 (0) | 2006.06.14 |
따뜻한 이야기 2-신문칼럼에서 (0) | 2006.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