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백건우 베토벤소나타 전곡연주회3

바다가는길 2007. 12. 15. 01:33

 

 

:: 12월 14일(금) 오후 8시 :: 예술의 전당

 

-프로그램-
소나타 30번 E장조, Op. 109

1.vivace, ma non troppo-adagio espressivo-tempo1 2.pretissimo 3.andante molto cantabile ed espressivo

 

소나타 31번 Ab장조, Op. 110

1.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2.allegro molto 3.adagio ma non troppo-fuga


소나타 32번 c단조, Op. 111 

1.maestoso-allegro con brio ed appasionato 2.arietta(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베토벤소나타가 이렇게 아름다운 곡들이었단 말인가? 한 마디 한마디, 한 소절 한 소절이 다 너무나 마음에 유감하게 다가온다.

첫 곡 30번은 끝나는 줄도 모르게 슬며시 사라져버린 곡, 관객 몇만 살짝 박수를 치다가 말았는데...바로 이어지는 31번 첫 악장을 들으며 이게 30번이야, 31번이야...헷갈려 하느라 잠시 곡에 집중하지 못하다가, 몇 번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지?, 이내 다시 곡에 마음을 기울였었다.

후기소나타들. 1820-22년 사이에 작곡됐다니 1827년, 죽기 몇 년 전에 작곡된 곡들.

세 곡이 한 곡같기도하고, 한편 한 악장안에서도 곡의 흐름 너무 다채로워 한 악장이 여러 악장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변화무쌍한 선율의 흐름을 쫓느라 온 몸이 귀가 되기도 했지만, 추상화에서도 기어코 뭔가 구상적인 것을 찾아내고야마는 버릇대로 음악을 들으며 또한 무수한 영상이 머리속을 스치기도 했다. 

가령 갓 잠에서 깨어나 창문 열고 내다보는 아침 햇빛에 빛나는 강물, 그리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분주히 나뭇잎 속을 드나들며 지저귀는 새들.. 종소리..반짝거리는 눈결정..생각에 잠겨 방 안을 서성이는 사람..어둑해지는 하늘..노을..  

곡들은 울다가 웃다가, '괜찮아 다 괜찮아'스스로를 다독이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도대체 왜 내게!' 분노로 으르렁대며 머리칼을 쥐어뜯다, 삶과 세상을 아름다워하다, 참을 수없는 슬픔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짓다, '어쩔 수없는 일이야' 체념하다, '그래도 이만하면 즐거웠어 감사해' 긍정하다...

신의 편이 되었다가 악마의 편이 되었다가하며 빛과 어둠을 현란히 넘나들며 인간이 지닐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들을, 인간이었기에 느꼈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끝에 만져지고 마음에 들어왔던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과 슬픔들을 풀어냈었다.

그러다가 또 슬그머니, 긴 길 걸어 저만치 사라져가는 사람처럼, 점점 작아지다 점처럼 작아지다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한 때 하늘을 거침없이 행군했으나 공중으로 스며 자취를 잃는 구름 한줄기처럼, 베토벤 스스로 그렇게 긴 독백을 끝낸다는것처럼 점.점.점, '..........', 말없음표로 마지막 한 음이 잦아들었다.

연주자는 마지막 음을 누르고도 건반에서 쉽게 손을 떼지못하고, '제발 박수는 좀 있다가...마지막 소리가, 그 여음이 저 천장을 빠져나갈 때까지만...', 나 또한 그 마지막음의 여운이 깨지는 게 싫었다.

그러다 연주자의 손이 건반을 떠나자 이내 쏟아지는박수소리.

연주회의 마지막날, 베토벤소나타 전곡연주회라는 희귀한 작업을 너무나 훌륭하게 마친 백건우씨에 대한 찬사로 나를 비롯한 몇몇 귀차니스트들을 제외하곤 모두 기립하여 그를 격려했다. 환해진 연주장,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서로 다 아는 지인들인 것처럼 서로에게 따뜻한 표정으로 웃음 띄우고, 꽃다발이 안겨지고, 연주자는 객석 모든 곳에 빠짐없이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 인사에 또 그치지않는 박수로 관객은 화답하고...

정말 좋은 연주회였어. 감동이었다. 백건우씨는 언제나 참 신뢰할만한 연주자다.

하지만 베토벤의 마지막 세 소나타는 조심해서 들어야겠어..우울할 땐 듣지말아야지..마음 너무나 애잔해..

 

지난 번엔 공연장을 나서니 비가 오고있더니, 이번엔 폴폴 눈이 날리고 있다.

가로등 불빛에, 자동차 전조등에 하얗게 하얗게 빛나며 세상을 가득 채우더니 집에 도착하니까 거짓말처럼 그쳤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시간 나만 누려도 되나, 뉴스를 보니 기름유출때문에 살아갈 일이 막막해진 사람들도 많은데...

미안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