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김선욱 리사이틀

바다가는길 2006. 8. 31. 01:22
세종 체임버홀 개관 페스티벌-김선욱

 

 

2006-08-30

19:30

F.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C 장조, D. 760
F. Schubert Fantasia for piano in C Major ("Wanderer"), D. 760 (Op. 15)

S.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42
S. Rachmaninov Variations on a Theme of Corelli Op. 42

A.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4번 F# 장조, Op. 30
A. Scriabin Piano Sonata No. 4 in F# Major, Op. 30

B. 브리튼 / B. Britten 밤의 소품(노투르노) / Night Piece (Notturno) for Piano

L.V. 베토벤 / L.V. Beethoven 피아노 소나타 32번 C 단조, Op. 111
Piano Sonata No. 32 in C Minor, Op. 111

F. 리스트 / F. Liszt 피아노 소나타 B 단조 / Piano Sonata in B Minor 

2005년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과 2004년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거머쥔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세계가 주목하는 테크닉과 음악성을 겸비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보이고 있는 그는 2006년 5월에 독일 에센에서 열린 ‘루르 피아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들과 함께 실력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영재로 입학, 김대진교수 문하에서 수학 중이다.


패기 넘치는 강한 터치와 열정, 그리고 빈틈없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는 신예 피아니스트의 장장 두 시간이 넘는 피아노 독주회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음악세계를 자랑하는 김선욱은 이번 연주에서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스크리아빈과 베토벤, 리스트의 소나타와 같이 굵직굵직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세종 체임버홀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구경해야할텐데 하고 생각하던 차에, 김선욱이라는 연주자이름은 처음 들어보지만 레퍼토리가 하도  풍성해 가보기로했다.

세종체임버홀은 새로 만든 티 폴폴 나는, 아직은 설익은 과일같이 풋기 어린, 500백석이 좀 안되는 규모의 아담한 공간.

꾸밈없는 소박함이 마음에 든다.

제일 싼 표를 산 탓에 자리는 2층의 박스석. 그런데 예술의 전당 합창석도 그렇지만, 제일 싼 자리가 때로 로얄석을 능가하기도 한다.

자리를 찾아가보니 연주자의 바로 코 앞. (연주 내내 연주자의 옷깃에 똑 똑 떨어지는 땀방울까지 다 보였다.) 마이크를 통해서 들리는 소리뿐 아니라 피아노 소리가 생으로 들리는 자리니, 이런 행운이...

예술의 전당 합창석도 그렇지만, 여기도 자리는 거의 로얄석 수준이지만 본 객석과 거의 마주봐야해 약간 민망한 위치인데, 게다가 공연 중에도 객석의 조명이 제법 밝아 관객들의 얼굴이 다 보인다.

그렇게 얼굴들이 다 보이니 연주자가 연주에 집중할 수 있을까, 하던 나의 걱정은 아마도 기우였나보다.

첫 곡 슈베르트를 연주하는데 단조의 멜로디에 대번에 눈물 핑 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공연이라도 공연 내내 불안하기도, 아니면 너무 평이해 지루하고 자꾸 딴 생각나기도 하는데, 연주가 제법 흡입력이 있다.

체임버홀이라는 아담한 공간이어서인가, 바로 코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있어서인가, 아니면 연주가 좋아서인가...

젊은 연주자답게 자신만만하고 활기차면서도 표현이 풍부한 연주였다.

멜로디가 슬퍼지면 마음도 같이 슬퍼지고, 멜로디가 명랑해지면 마음도 같이 웃고...

슈베르트는 눈물나게 아름답고, 스크리야빈에서는 왠지 전에 본 영화 '클림트'에서 깨져 파편이 돼있던 거울조각들이 자꾸 생각나고, 브리튼은 모던한 느낌이고...

색깔이 다른 곡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색다른 느낌.

김선욱이라는 연주자에 대한 인상으론 그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볼 때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곡들이 어울릴 것 같은데 의외로 베토벤 소나타 연주가 귀에 쏙 든다.  평소에 별로 안좋아하던 곡인데...

담담한 아름다운 멜로디들, 예쁘게 만들어진 동그란 음들이 비누방울처럼 공중을 날아다녔다.

이어서 아마도 회심의 역작, 리스트...역시 기량을 맘껏 뽐내는 듯한,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열정적인 연주.

마치 또 하나의 본 레퍼토리인 것 같은 앙콜곡까지(멜로디는 귀에 익은데 곡명은 모르겠다) 이만하면 만족이야 하는 포만감이 드는 좋은 공연이었다.

가끔 건반을 떠나 환상을 보는 듯, 꿈을 쫓는 듯 허공을 더듬던 그의 하얀 왼손이 참 어여뻤다는 생각.

 

귀로 들을 때 때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방해된다.

박스석 뒤로 제법 넓직한 마루공간이 있던데 거기에 돗자리라도 깔고 누워 눈 감고 연주를 들었으면 아마 참 좋았을 것...

 

집에 돌아와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아니 제법 연주자의 풍모가 보이던 이 녀석, 만18세, 스무 살도 안된 청소년이라네.

앞으로 어떻게 커 갈지, 어떤 연주자로 성장해 갈지 정말 궁금해진다.

 

어제는 피아노의 날이었나보다.

공연 전 들른 교보문고에서 청음기에 끼워져있던 폴리니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에 필이 꽂혀 사들고 와서는 밤새 듣고 오늘도 하루종일 귀에 매달고있었다.

아마 오늘 밤에도 나의 자장가가 되어 줄 것.

그렇게 악기를 만들고, 수많은 음의 파장 중에 어떤 어떤 파장을 따로 골라 음악이란 걸 만들고, 그걸 연주하고, 들으며 또 즐기고 기뻐하고...

인간이라는 동물, 그럴 때 보면 간혹 이쁜 구석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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