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저/이규원 역/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원서 : 建築家 安藤忠雄
건축이야기에는 반드시 빛과 그림자라는 두 측면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밝은 빛 같은 날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배후에는 그림자 같은 날들이 있다.
독학으로 건축가가 되었다는 나의 이력을 듣고 화려한 성공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 전혀 그렇지 못하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아무런 뒷배도 없고 혼자 건축가로 일했으니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살아왔을 리가 없다. 여하튼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애오라지 그림자 속을 걷고, 하나를 거머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늘 역경 속에 있었고, 그 역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이가를 궁리하면서 활로를 찾아내 왔다.
그러므로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있다면 그것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 것이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림자'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정보화기 발달하고 고도로 관리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볕이 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빛과 그림자, 이것이 건축 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배운 나 나름의 인생관이다.
작가 후기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 건축적 업적을 이뤄놓고 자신한테 예술가적 기질이 없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되지만,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삶을 살고 이루어낸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언어로 진솔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안도 다다오 스스로 쓴 책인만큼 그가 살아온 이력과, 그가 해온 작업들이 어떤 의도로 기획되고 어떤 상황을 통해 완성이 됐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어보니 그는 유명한 건축가여서가 아니라 그라는 인간 자체가 모델을 삼아도 좋을 만큼 훌륭하구나.
그의 작업은 세계로 바운더리를 넓혀가며 현재진행중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완성되면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겠지.
책은 손바닥에 쏙 잡히게 작은 판형에 글과 매치되게 사진자료들이 잘 배치돼있어 글의 내용과 사진을 비교해보며 흥미진진하게 편리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참 정성들여 만든 책이라는 느낌.
좋아하는 건축가의 얘기라 재미있게 단번에 읽은 책.
타인의 자금으로, 그 사람에게는 평생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건물을 지어주는 것이므로 그에 걸맞은 각오와 책임이 있어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미래를 키우기 위하여 오로지 자기 하나만을 위하여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먼저 사회에 진출한 우리는 그 의욕에 부응하여 기회와 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을 사회의 재산으로 보호하고 키워 나가야 한다.
주거란 무엇인가...이에 대하여 나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제한된 대지이기 때문에 냉혹함과 따뜻함을 두루 가진 자연의 변화를 취대한 획득할 수 있어야한다는 점은 최우선시하고 무난한 편리함을 희생시켰다.
극소라는 말로 표현해야 마땅한 대지에서 자연과 공생하려는 것은 분명 무리한 발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그 녋지도 않은 집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정은 얼마나 낭비적인 공간인가. 하지만 나는 이 중정이라는 공백이야말로 좁은 집안에 무한한 소우주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동시에 중정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그 냉혹함까지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의 멋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인간에게는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안이한 편리함으로 기울지 않는 집. 그곳이 아니면 불가능한 생활을 요구하는 가정집.
건물안에서 느끼는 자연을 '빛'으로 좁히고, 그 '빛'의 다양한 포섭 방식을 고안하여 각 공간의 특징을 만들어 나간다.
고시노 주택에서는 그 '빛'의 공간을 장식을 배제한 콘크리트 박스 속에서 시도했다.
나에게 주택을 의뢰한 건축주 대부분은 내가 설계한 주택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하는 고민없이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라는 디자인이었고,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은 복잡하지 않고 밝고 즐겁고 편리한 현대식 주택이었다.
양자 사이의 어긋남을 메워 나가려면 어느 부분에서는 내 생각을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영합해 나가다 보면 언제가는 본질을 잃고 말 것이다. 나는 사회와 그렇게 어긋나는 느낌에 갈등하고 ,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주택건축 작업을 계속했다.
사무소 운영에 불리한 줄 알면서도 주택 작없을 계속 맡는 것은 사무소에 새로 들어온 젊은 스태프를 위해서이다. 그들이 건축이 무엇인지를 배우려면 두루 관여해 볼 수 있는 규모의 주택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주택 작업을 통해 아직 제 몫을 해내기 힘든 스태프를 채찍질하는 한편 건축이란 일에 임하는 각오를 가르친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 좁은 대지에 예산이 부족한 악조건을 극복하고 짓는 작은 집이다. 위라래가 트인 계단실이 그대로 주택이 된 듯한 '갤러리 노다', 도시의 틈새에 끼워 넣듯이 지은 '니혼바시 주택', 낮은 예산으로 극한까지 추구한 '시라이 주택', 세토 내해에 훤히 내다보이는 해안가의 사방 5미터 대지에 4미터X4미터짜리 극소 주택도 지었다.
도시가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인지를 온 몸으로 확인한 것은 세계 방랑 여행에서이다. 각 도시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고, 장소마다 고유하 ㄴ발견과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도시와 비교했을 때 세계의 대표적 도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도시에 흐르는 '풍성한 시간'이다.
예를 들면 파리나 빈의 중심가에는 1세기 이상 묵은 건물이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되고 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홍연일체로 겹쳐지는 그 정경에 매우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로즈가든'에서 내가 정말로 실현하고 싶었던 것은 벽돌 벽이 아니다. 그 벽 너머 존재하는 '공간'이다.
2개 동 사이에 있는 여백의 공간. 그 뻥 뚫린 외부 공간에 회랑을 두르고 계단으로 연결하여 점포가 줄지어 선 '길'이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와 바람이 드나드는 그 '길'은 골목처럼 종종 불규칙하게 꺾어져서 건물 안에 '정체'나 '고임'의 공간을 만들고, 계단을 오르면 벽 틈새로 고베의 앞바다가 내다보인다. 내가 생각한 것은 건물 속에 또 하나의 거리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였다.
스미요시 나가야 이래, 갇힌 영역 속에 자연을 빛과 바람이라는 추상화된 형태로 끌어들이는 방향을 추구해 온 내가 이제는 역으로 자연 속에 건축을 들여보내는 식으로 발상했다는 점에서 'TIMES'는 하나의 전기를 이룬 작업이었다.
주위에 살아있는 자연이 있다면 그것을 적극 활용하여 환경을 다시 짜 맞출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연은 변화라는 풍요로움을 주는 반면, 수고가 많이 들고 번거로운 것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는 그런 자연을 상대로 기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불안 요소를 배제하려고 하는 합리주의 논리에 따라 건설되고 있다. 자연과 도시의 이러한 골을 건축으로 메웠을 때 시야에 떠오르는 것이 사회 비평으로서의 건축이라는 주제이다.
현대 사회가 외면하고 밀쳐 낸 것들을 보듬어 내고 그 문제를 부각시키는 건축, 그 장소 그 시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건축.
규모가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현실의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문제 제기를 하는가. 중요한 것은 건축의 배후에 있는 의지가 얼마나 굳은가 하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되어 온 시간의 흐름을 끊어 놓지 않겠다는 자세, 도시의 기억을 계승하는 건물로 짓겠다는 자세.
내가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도 미학적인 의도에서만은 아니었다. 벽 안팎을 단번에 마감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는 제한된 예산과 대지에서 최대한 커다란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거푸집을 만들고 그 속에 시멘트를 부어 넣으면 어떤 형태든 자유자재로, 더구나 단번에 만들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더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력적이었다.
건축가의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기능성을 가진 재료라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다. 누구한테나 열린 수단이란, 바꿔 말하면 남들과 차이를 드러내기가 힘든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수한 수단으로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것을 만들고 싶다. 어려운 만큼 만드는 '꿈'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재료를 콘크리트로 좁히고 구성도 기하학적 형태를 고수한다는 단순한 틀을 정해 놓고 그 틀 속에서 복잡 다양하고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에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스물여덟 살 시절, 가진 것 없이 설계사무소를 열 때부터 '일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1990년 말, 시가현에 있는 농업공원 안에 작은 미술관을 지었다. 화가 오다 히로키의 작품을 전시하는 '빨간모자 오다히로키뮤지엄'이다.
이 건축 이미지의 원천이 된 것은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화가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 나오는 집은 화가가 폐자재를 이용하여 손수 지은, 전기도 가스도 수도도 없는 엉성한 것이었다. 움막 같은 그 집에서 화가는 해가 있을 때는 애오라지 그림을 그리고 일몰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했다. 화가와 함께 검소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 그런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므로 사진에 나오는 정경을 고스란히 담다 두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인공조명을 설비하지 않고 자연광만 이용하는 미술관이라는 아이디어였다.
작품 보호를 최우선에 둔다면 전시실은 일정한 조건으로 괸리해야 하므로 인공적인 환경을 갖춰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작품을 표준화하고 가사 상태에 두는 것이므로 참된 의미에서 작품을 '살린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 두면 그림도 인간과 동일하게 늙어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한계가 지어진 시간 속에 두기 때문에 '살아 있는' 그림도 가능할 것이다. 모범답안이 되기는 힘든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오다 히로키의 그림에는 그런 '최후의 안식처'로서의 미술관이 어울릴 것 같았다.
건물은 풍부한 녹음에 둘러싸인 연못가에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자리 잡았다. 연못을 바라보는 유리 회랑 배후에 배치된 전시실은 벽을 따라 뚫린 톱라이트의 빛이 유일한 채광이다.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빛이 변하며, 그에 따라 공간과 작품도 표정을 바꾼다. 자연스럽게 숨 쉬는 이 미술관은 일몰 시간이 곧 폐관 시간이다.
새로운 건축에 임할 때 항상 의식하는 것은 '그 건축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는가?'를 묻는 것, 즉 원점 혹은 원리로 돌아가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공 건축, 즉 입지 환경을 최대한 살리고 그곳이 아니면 안되는 개성적인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는 시설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건축가가 뛰어들어서 관여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가장 힘들었던 점은 건축의 형상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절충하는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공공시설의 진짜 문제는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 나타난다. 그 건물은 어떻게 운영하여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 살려 나갈 것인가. 즉, 건물의 쓰임새가 문제였다.
건축가라면 자기가 관여한 건축이 서 있는 한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오시마의 일련의 프로젝트는 베네세 코포레이션이라는 한 기업에 의해 기획되고 운영되고 있다.
당시 나오시마는 외딴 섬이라는 열악한 접근성도 문제였지만, 오랜 금속제련산업의 영향으로 자연이 심하게 황폐해지고 인구 과소화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빈 말이라도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입지였다.
그러나 후쿠다케씨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캠프장 제 2기 공사를 시작할 때는 예술과 자연이 한 덩어리가 되는 장소로 만들자는 구상, 최종적으로는 인구가 줄고 있는 쇠락한 섬을 문화의 섬으로 되살린다는 웅대하고 용감한 구상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 강렬한 취지에 공감하여 나도 그 프로젝트에 진지하게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건축 프로젝트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숙박시설을 곁들이 '체류형'미술관 기획이었다.
나는 섬 남단부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경을 가진 곶위를 대지로 택하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지형을 따라 땅에 묻힌 듯한 건축을 생각했다.
미술관에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닷길로 접근한다. 잔교에서 바라보면 미술관의 절반은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는 지상으로 솟은 부분으로 빛이 넘쳐날 만큼 풍부하게 비춰들고, 바다 쪽으로는 다양한 각도에서 세토 내해의 바다 풍경을 보여 주는 테라스가 실내와 연속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마련되어 있다.
전시실은 미술관 내부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미술관에 가려면 거치게 되어 있는 잔디 광장에서 잔교 위까지 그리고 모래사장까지, 그야말로 대지 전체가 예술의 장으로 되어있다. 안팎으로 얽혀 있는 변화무쌍한 장면이 연속되다가 문득 자극적인 예술작품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하는, 자연을 향해 활짝 열린 미술관이라는 이미지이다.
먼저 건축이 있고 거기에 우발적으로 예술이 개입해 감으로써 예술 공간을 획득해 간 '베네세하우스'와는 달리 땅 속의 치추미술관을 지을 때는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같은 아티스트 3인의 작품 퍼머넌트 전시 프로그램을 미리 정해 두었다.
그들이 건축가인 나에게 기대한 것은 아트디렉터및 아티스트와의 협동으로 각 예술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공간을 마련하고, 나아가 그것들을 내포하면서도 자립된 건축을 짓는다는 제4의 아티스트 역할이었다.
전체적인 이미지로서 나는 베네세하우스의 '지형과 일체화된 건축'이라는 아이디어를 더욱 순화시킨 듯한, 지하에 입체적으로 전개된 어둠의 공간은 제안했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빛을 길잡이 삼아 땅속의 어둠 속을 걸어가면 그 끝에 터렐, 드 마리아, 모네의 예술을 감싼 빛의 공간이 떠오른다.
예술이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터를 얻는 '베네세하우스'가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의 '動'의 성격을 담당한다면, 폐쇄된 어둠 속에서 아트와 건축이 긴장감 있게 대처하는 '치추미술관'의 집약적인 공간 세계는 '靜'의 성격을 가진다. 치추미술관이 완성됨으로써 예술과 자연과 역사를 대면하고, 사색하는 장소와 시간을 제공하겠다는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더욱 강하고 깊이 있는 것이 되었다.
건축가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좁고 험한 여정이며, 대학교육도 받지 않고 아무런 사회적 배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그 집단 속으로 끼어들 가능성은 전무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나는 절망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출발선에 설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에게 있는 오사카인 기질, 즉 공리공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실학적 성향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우선 앉아서 일감을 기다리는 엘리트다운 건축가 모습은 나랑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깨끗이 포기했다. 건축을 업으로 삼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일감이 없으면 스스로 가능성을 일궈 내서 일감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기족이나 친척 같은 연줄을 이용해서 일감을 얻는 방법은 지속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머리속에서 지웠다.
타고난 기질상 누구한테 고개를 숙이고 일감을 따내는 짓은 도저히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발 디딜 곳을 모색하며 꿈을 쫓아온 만큼 내가 지금도 중시하는 것은 '이런 건축을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잃지않는 것이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재미는 한 건물의 설계를 통하여 예술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나 문화, 사회제도의 문제등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다양한 가치관을 만난다는 데 있다.
또 하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배려해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이 내버려 두는 장소를 일삼아 만드는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 '이곳은 이렇게 사용하시오'라고 하나하나 결정해 버린다면 사용하는 사람은 상상력을 움직여서 활용하는 재미를 누릴 수 없다.
건축 설계의 목적이란 합리적이고 경제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쾌적한 건물을 짓는 것이다. 닫힌 실내에서 숨죽이고 사는 것과 다소 불편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생활 중에 어느 쪽이 더 '쾌적'할까. 이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일상생활과 가치관의 문제까지 살펴서 궁리한다면 건축의 가능성은 더 넓어지며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불교에서 연꽃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종래와 같은 상징적인 대형 지붕으로 권위를 드러내는 건물이 아니라 연꽃 연못으로 부처나 중생의 전부를 두루 감싸는 법당이 가능하지 않을까. 불교의 정신세계를 건물형태가 아니라 우회하는 길을 지나 연꽃 연못 밑으로 들어가 법당에 들어선다는 공간 체험 자체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연꽃 밑에 법당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주지스님과 신도들에게 이야기하자 "중요한 법당 위에 물을 채운다니 당치않아요. 지붕 없는 절은 있을 수 없어요" 하고 크게 반대했다.
신도와 건축가 사이에서 곤혹스러워 하던 이우에 씨는 고민 끝에 친하게 지내던 고승에게 상담을 청했다.
사정을 듣고 난 큰스님은, "연꽃은 불교의 원점인데, 그 연꽃 속으로 들어가는 구조라니 아주 좋구먼. 부디 실현시켜 주시오."라며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 한마디에 상황이 일변하여 프로젝트는 즉시 추진되었다.
내가 하는 건축은 특히 해외 사람들에게 '일본적'이란 평을 들을 때가 많다. '빛과 그림자'의 모노그램 세계, 혹은 콘크리트로 에워싼 간결한 공간에 '無'나 '間'이라는 일본적 미학이 숨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일본'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무언가 있었다면 관서지방에서 태어나고 나라, 쿄토의 고건축을 친근하게 접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몸에 밴 감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콘크리트와 기하학을 이용한 한정된 수법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는 오히려 '일본'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전통이라는 것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이는 현대건축의 보편적 주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나도 지역의 고유한 전통과 풍토를 무시하고 경제성과 기능성만을 따지는 건축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이나 장소의 특성을 재생한다는 과제를 '꼴'의 인용으로 직결시키는 발상에는 공감할 수 없다. 전통적 형태의 모티프를 이리저리 짜깁기했을 뿐인 건물로 과거의 끈을,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표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이란 눈에 보이는 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꼴을 지탱하는 정신이다. 나는 그 정신을 건져 올려 현대에 살리는 것이 참된 의미의 전통 계승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건축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나에게는 극단적이다 싶을 만큼 절제하는 금욕적 생활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한 동경과 관련하여 내가 품고 있던 이미지가 중세 유럽의 로마네스크 수도원이다.
인간의 정신에 호소하는 저 엄숙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콘크리트 박스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에서 태어난 것이 '빛의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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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없다. 하지만 감히 그 장애를 뛰어넘어 풍요로운 마음이 담긴 건축을 하고 싶다....
사람의 '생각'은 경제를 초월하는 힘이 된다. 빛의 교회는 사무소를 연 지 20년 남짓 지나서 주변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짓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물음을 새삼 마음에 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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