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 온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았다.
눈폭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겐 모처럼 늘 눈과 함께 있는 겨울같은 겨울이었다.
곳곳에 희게 쌓인 눈 그대로더니 입춘, 우수지나고 문득 바람 색깔 달라지고 어느 새 눈들도 사라졌다.
떠나는 겨울 미처 따라잡지못한 그늘 구석진 곳 눈더미도 오늘 비로 완전히 씻겨나겠지.
이제 다시 겨울을 만나려면 봄 지나, 여름 지나, 가을 지나 한참을 기다려야겠다.
지난 겨울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듣고 일부러 찾아갔던 남이섬.
사진으로 남은 그 시간, 그 겨울을 기억하며 다음 겨울을 기다리자...
남이섬 건너가는 배 위에서 내려다본 강물, 뱃길따라 부서진 얼음조각들 얼키고 설켰다.
뱃길로 부서진 곳 외엔 강은 모두 얼었다.
그 위에 살풋 쌓인 눈이 꼭 새 두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아...
아니, 눈이 온다는 바람에 눈 쌓인 풍경 보고싶어 여길 왔는데 하늘에 동그란 해. 어쩔ㅠㅠ.
날씨도 추운데 우선 밥이나 먹자구.
남이섬안 디마테오 피자집.
그새 추위에 언 몸을 녹이며 갓 구운 맛있는 피자 한 조각 먹고있자니 밖에 내리기 시작하는 눈.
와,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네!
추운 줄도 모르고 장작불 앞에 있는 꼬마.
점심 먹고 그 옆집에서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나오니 그새 소복히 쌓인 눈.
남이섬 곳곳엔 장작불이 지펴져있어 추위에 언 사람들에게 신체적 심정적 따스함을 주었다.
장작이 다 탈 때쯤이면 꼭 직원들이 아니라도 관광객들 스스로 근처 장작더미에서 나무를 가져다 불을 지핀다.
중고생쯤 되보이는 딸, 아들과 또 부인과 가족나들이 온 아빠가 눈에 젖어 잘 타지도않는 장작을 연기에 기침 콜록여대며 열심히 지펴놓으신 불이다.
'아빠, 여기 직원해도 되겠어' 하는 애들의 애정어린 야유를 들으며 덕분에 여럿이 같이 따뜻했던 모닥불.
나무 밑 불꽃 너무 예뻐 그냥 손을 쑥 집어넣고 싶던...
자작나무 숲.
밥 먹고 나오는 새 누가 벌써 많이들 돌아다녔어.
이 나무들엔 명패가 하나씩 달렸다.
남이섬 셔틀버스에 비치돼있던 책을 보니, 섬에 숲을 가꾸라는 전 주인의 유지를 따르자니 돈이 많이 들어 낸 아이디어가 나무를 기증받는 것.
식목일에 나무를 심게 하고 나무를 기증한 사람들에게 평생 남이공화국 국민 자격을 준다.
평생 무료로 남이섬을 올 수 있고 해마다 기원을 담고 자라나는 자기 나무를 가질 수 있다. 윈윈이란 이런 것이 아닐지.
봄 되면 자작나무 어린 연두잎들이 또 얼마나 이쁠까?
(그런데 다시 보니 이거 자작나무 아닌가? 자작나무는 둥치가 하얀데...정체를 확인하러 봄 새잎 날 때쯤 다시 한 번 가봐야할까...)
으아, 새하얀 세상!
강변을 따라 지그재그로 놓여진 '연인의 길'
뭐 연인끼리가 아니면 어때, 좁은 나무길이 너무 정겨운 걸.
언 강 위로, 언 나무 위로 흰 눈이 쌓였다. 부러진 나무토막도 강 위에 얼어붙었다.
가만히 서있으면 크엉, 크엉, 언 강이 우는 소리 들린다.
강을 내다보라고 만든 깜찍한 뷰포인트, 혹은 포토존.
그냥 망연히 바라보는 마음......
강변을 따라 늘어선 방갈로들.
방갈로 지붕에 문양처럼 쌓인 눈, 그 옆에 아무도 건드리지않은 새 눈. 사진 찍고 내가 밟았다. 그 신선하고 보드랍고 폭신하고 청량한 느낌.
언제 한 번 이 방갈로에서 하루 자봐야지, 남이섬 아침 안개 보러...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 한 쌍.
제법 솜씨가 있고 표정이 있다.
눈이 내리고 또 내리고....아득해진 세상...
이런 고요, 잠깐 인간세계가 아닌 것 같아 숨 죽이고 서있음...
여기도 또한.
내 발소리도 시끄러워.
돌아가기 아쉬워 뒤돌아 보니...
떠나는 배 안. 눈은 눈물처럼 창에 맺혀...
배에서 본 남이섬 선착장 풍경.
펄럭이는 만국기들과 눈 덮힌 숲 사이로 난 하얀 길이 나를 다시 부르는 듯.
검은 강물 위로 여전히 내리는 눈발.
그리고 사라져가는 세상...
그리고 화이트 아웃...
다시 인간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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