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회의 대장정 전반부가 오늘로 끝이 났다.
연주자에겐 대장정이었겠지만, 두 세달을 기다려 두 시간쯤의 연주를 듣는 일이란 듣는 사람에겐 감질 나는 일.
연주회 끝나고 항상, 맘 같아선 김선욱을 피아노 앞에 붙잡아 앉히고 한 다섯시간쯤만 연주를 시키고 싶다고 생각했곤 했었다.
두 시간쯤의 연주도 혼신의 힘을 쏟는 일일 터여서 매번 연주회때마다 열화와 같은 앵콜에도 답하지 못하고 몇 번의 무대인사만으로 끝내는 사정을 알고있으니. 연주자에겐 어쩌면 고문일까?
오늘 4번째의 연주에 와서야 관객들도 더이상 앵콜을 요청하지 않더라.
그동안의 연주들 참 좋았었다.
마침 집에 브란델의 연주전집이 있기에 때론 예습을 하고 때론 복습을 하기도 했는데, 브란델의 연주는 명료하고 깔끔하지만 어쩐지 재미가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김선욱의 연주는 늘 그렇듯 참 감성적으로 다가왔었다.
악보는 정해진 음표와 악상기호들로 이루어져있으되 그는 그걸 자기만의 목소리로 말해보고싶다는, 자기 마음에 부딪힌 대로 자기의 감동을 청중에게 전하고 싶어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그의 연주가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런 감수성 어린 레시피가 나의 입맛에 맞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가령 맘 먹고 길게 잡는 pause, 순간 공연장 커다란 공간을 정적으로 감싸는 깊은 휴지, 이렇게 고요해진 다음에 감히 어떻게 다시 첫음을 낼 건가 걱정될 정도의 침묵, 혹은 자로 잰듯 정교하기 이를데없던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또 때때로 심장이 다 녹아버릴듯 달콤하게 그의 손가락에서 스르르 풀려나오던 멜로디들...
마음을 이리로저리로 끌고다니며 슬프게, 기쁘게, 아프게, 그립게, 아련하게, 즐겁게, 괴롭게, 안온하게,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던 연주들, 다 아름다워 맘 속으로 으악! 하며 짜릿짜릿하던 순간들 많았었다.
딱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감정의 최고조에서 피아노가 부서져라 두드려줬으면 하는 때에 내 느낌엔 힘이 좀 모자르다 싶던 순간들.
베토벤 소나타를 이렇게 정식으로 1번부터 다 듣긴 처음이지만 비록 대중적 명성을 얻지못한 곡이라도 모든 소나타들이 들어보니 정말 다 아름다웠었다.
개인적으로 따로 부제를 지어주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곡들도 많았고, 리듬이, 조가 순간 순간 바뀌는 게 클래식이 참 jazzy하다 싶던 때도 많았고.
특히 이루 말하기 어렵게 아름답던 내가 좋아하는 아디지오, 라르고 악장들...
'아름답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어휘의 부족이 정말 아쉽다. 그 느낌들을 내가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 연주된 곡들은 13, 14, 15, 16번.
13번 E플랫 장조 '환상곡풍의 소나타', 14번 C 샤프 단조 '월광', 15번 D장조 '전원', 16번 G장조
오늘의 곡들은 모처럼 참 따뜻하고 편안한 곡들.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 오후의 햇살 받고 있듯 미소로 들을 수 있는 곡들이었다.
전곡연주회 시작 때 인터뷰 기사들을 본 기억이 난다.
베토벤 전곡 연주가 끝나면 러시아 작곡가들, 그리고 프랑스 작곡가들을 섭렵해보고 싶다던 말.
그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드뷔시들이 기다려진다. 레퍼토리에 메시앙도 넣어주었으면...
바흐는 안좋아하나? 나의 favorite들을 그의 연주로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지금은 어느 덧 자라 듬직한 성인이 됐지만, 그의 감성어린 연주를 들을 때면 항상 내가 들은 첫 연주, (이 녀석이 아직 미성년이었을 때의) 그 연주를 듣고 연주자가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하다 본 사진 속 소년,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웃고있던 빼빼 마른 여린 소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내년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건가? 아마 점입가경일 게 분명한데.
당분간 뚝 잊고 있어야지, 기다리기 지루하니까.
아, 그리고 주최측의 노고를 얘기해야겠다.
보통 연주회 팜플릿은 한 번 읽고 버리게 되서 잘 안사는데, 4번의 연주회를 위한 이번 팜플릿은 한 악장 한 악장에 대한 세심한 곡 해설과 베토벤소나타 연주 명반 소개, 연주자 인터뷰들로 하나도 버릴 게 없이 너무 알차서 음악을 듣는데 무척 도움이 됐을뿐더러 청중의 입장에서 거의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 해설 중에 이런 말이 있던 게 기억난다.
'어쨌거나 우리는 김선욱의 첫번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듣는 청중이 됐다'라는 취지의 글.
듣고보니 그렇네, 싶다.
앞으로 그가 평생 동안 전곡연주회를 두 번 하게 될지, 세 번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연주는 지금의 이 연주와 같지는 않겠지.
지금 이 연주들을 기억해 그 때 비교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텐데...
다시 음악을 들을 날을 기다리며, 항상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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