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홀리 모터스(holy motors)-레오스 카락스

바다가는길 2013. 4. 10. 21:22

홀리 모터스
감독-레오스 카락스

출연-드니 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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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OVIE

연기 - 모든 배우의 숙명을 연기하는 드니 라방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가 지나야만 관객들은 주인공의 정체를 알게 된다. 딸에게 “일 열심히 하고 오라”는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선 백발의 사업가가 리무진에 탄다. ‘물가 연동 국채’ 운운하며 업무상 전화까지 한 그는 곧 옷을 벗더니 리무진에 딸린 거울의 조명을 켜고 가발을 꺼내 손질한다. 순식간에 그가 탄 리무진은 분장실로 변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오스카. 그의 행동을 의아해하던 관객들은 서서히 그가 정해진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감지한다. 오늘 그가 배정받은 역할은 걸인, 모션 캡쳐 전문 배우, 광인, 아버지, 아코디언 연주자, 암살자, 희생자, 죽어가는 남자, 집 안의 남자 등 모두 아홉 개. 리무진이 그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데려다 놓으면, 오스카는 그곳에서 배정받은 역할을 연기한다.

<홀리 모터스>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오스카가 펼치는 1인 9역의 놀라운 연기를 감상하는 데 있다. 오스카를 연기하는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의 시점에서 보면 1인 9역이 아니라 1인 11역이다. 이 날 오스카에게 배정된 역할 아홉 개에 더해, 주인공 오스카 자신과, 그가 아침에 저택에서 나오며 연기한 사업가 총 두 개의 역할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아니 드니 라방은 허물을 벗듯 역할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신묘한 연기를 선보인다. 역할에 따라 외모는 물론이고 숨소리와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기묘한 풍경이 영화 내내 계속되는 것. 관객은 속수무책으로 그 장관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근엄한 사업가에서 무덤에 놓인 꽃을 뜯어먹는 광인까지, 용을 닮은 가상의 크리쳐가 섹스하는 동작을 만들어 내는 모션 캡쳐 전문 배우에서 딸의 거짓말에 화가 난 아버지까지, 허리가 굽을 대로 굽은 걸인에서 칼날을 곧추세우고 중국인 공장에 쳐들어가는 암살자까지. ‘배우 한 명이 한 평생 이토록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폭 넓은 연기를 드니 라방은 <홀리 모터스> 한 편에서 거뜬히 해치운다.

드니 라방은 <소년 소녀를 만나다>부터 <홀리 모터스>까지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 다섯 편의 영화를 함께한 사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며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에서 주로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을 연기해 왔다. 그러나 <홀리 모터스>를 보면 그가 광기 어린 인물부터 쓸쓸하고 소시민적인 모습까지 얼마나 폭넓은 연기를 해내는 배우인지 새롭게 실감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하루에 아홉 개의 삶을 사는 오스카는 배우, 곧 드니 라방 그 자신이다. 희생자가 된 오스카가 킬러의 손에 죽어도 오스카는 다시 살아나 다음 배역을 연기하지만, 그 배역을 연기하는 동안 오스카는 진실로 고통 받고 흥분하고 미치고 슬퍼하고 죽는다. 그것이 바로 연기의 본질이다. 드니 라방은 이 영화에서 어떤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 모든 배우의 숙명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영화 - 진짜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하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

잠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일제히 눈을 감고 있는 관객들은 옴짝달싹하지 않은 채 그저 객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 모두 잠을 자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 앞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가 킹 비더 감독의 <군중>(1928)이라는 사실은 오직 소리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 그 광경 위에 영화 제목 <홀리 모터스>가 나타나는 건 꽤나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자는 잠에서 깨어 열쇠로 변한 손가락으로 벽에 붙은 문을 열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온다. 그 남자는 바로 이 영화를 연출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다. 그의 등장은 영화관 안에 생명을 깨우는 신호다. 그의 뒤를 따라 객석 복도에 차례로 갓난아기와 검은 개가 걸어 들어온다. 아장아장 걷는 갓난아기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은 개의 발걸음 위로 마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이렇게 뇌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당신들이 보고 있는 영화는 죽었어. 이제부터 내가 진짜 살아 있는 영화를 보여줄게.” 그제야 비로소 영화는 하루에 아홉 개의 삶을 사는 주인공 오스카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홀리 모터스>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폴라X> 이후 13년 만에 만든 장편 영화다. <홀리 모터스>에서 오스카가 연기하는 아홉 개의 삶, 돌발적으로 일어난 노상 살인극, 옛 연인 진(카일리 미노그)과의 우연한 만남을 보고 있노라면 각기 다른 스타일의 영화 십 수 편이 한데 묶여 있는 것 같다. 모션 캡쳐 전문 배우의 에피소드로 CG를 적극 활용한 영화의 제작 과정을 훔쳐보는 것은 물론(이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황홀하면서도 관능적인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광인의 에피소드에서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2008년에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 중 <광인>의 주인공 광인(드니 라방)을 이번엔 도쿄가 아닌, 프랑스 묘지 지하도에 풀어놓는다. 아코디언 연주자의 막간극에서는 심장을 쿵쾅거리는 행진곡을 연주하고, 암살자와 희생자의 에피소드는 간담 서늘한 느와르로 변한다. 오스카가 옛 연인 진과 재회하는 순간 영화는 애수 어린 뮤지컬이 된다.

동시에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수많은 고전 영화들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에서 운전사 셀린(에디뜨 스꼽)이 하늘색 마스크를 쓰는 건, 에디뜨 스꼽이 스물세 살 때 열연한 조르주 프랑주 감독의 <얼굴 없는 눈>(1960)을 인용한 것이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홀리 모터스>에서 영화적 형식과 장르의 다양성을 마음껏 탐구한다. 그리고 마치 퍼즐을 맞추듯 자신이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의 조각들을 끼워 넣었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홀리 모터스>에서 영화의 우주를 탐험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인생 -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

오스카가 연기하는 아홉 개의 역할은 그대로 삶의 아홉 가지 단면이 된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 죽어가는 남자의 에피소드와 옛 연인 진을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고독과 슬픔을 포착한다. 아버지의 에피소드. 난생 처음 갔던 파티에서 화장실에 숨어 있기만 했던 딸 안젤(잔 디슨)이 “난 매력이 없잖아”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눈물을 비추며 이렇게 말한다. “네가 받을 벌은 너 자신이야. 평생 그렇게 사는 거.” 그리고 오스카는 단단히 화가 나서 리무진으로 돌아온다. 죽어가는 남자의 에피소드에서 오스카는 죽음을 경험한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조카 레아(엘리스 루모)에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이다. “네가 미움 받았던 건 네가 사랑 받았기 때문이야. 넌 사랑을 독차지했어.” 그 말이 꼭 안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처럼 들린다. 죽어가는 남자의 연기를 마치고 묘지를 지나쳐 가던 오스카는 철거 직전의 백화점 앞에서 우연히 옛 연인 진을 만난다. 서로의 다음 일정을 위해 딱 20분만 같이 있기로 한 두 사람은 추억의 장소인 백화점 안을 거닌다. 진은 오스카가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오스카는 “사라진 적 없다”고 말한다. 오스카는 진이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만 야속한 시간은 두 사람의 이별을 재촉한다.

인생의 고독에 대해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직접 드러내는 대목도 있다. 암살자와 희생자 연기를 마친 오스카가 리무진에서 분장을 지우고 있을 때 오스카의 맞은편,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전히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세요? (중략) 이제 못 믿겠다며 불평이 들어와요. 난 당신 작업을 좋아하지만 몇몇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뭔가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장편 영화를 발표하지 않았던 지난 13년 동안 자신이 느꼈던 불안과 고독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홀리 모터스>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연인 예카테리나 골루베바의 죽음을 딛고 만든 영화다. 예카테리나 골루베바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폴라X>에 출연했던 배우로 사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1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홀리 모터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그녀의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죽음을 기리고 있다. 예카테리나 골루베바의 죽음을 마주할 때, 영화 속에서 진이 부르는 “죽은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지”란 노랫말이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명성과 환호의 심술궂은 변덕, 연인의 죽음과 혼자 남겨진 자의 고독을 모두 담담히 이겨내고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었다. <홀리 모터스>는 인생의 거센 파도를 거쳐 온 모든 사람들을 향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보내는 담담한 위로이자 신성한 찬가다. 눈길을 빼앗는 황홀한 이미지가 그 자체로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을 담백하게 위로한다는 점에서 <홀리 모터스>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다.

영화주간지 < magazineM> 장성란 기자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 참 오랜만이었다. 

역시 색달랐고, 역시 여운이 깊고...

그 옛날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의 드니 라방이 이렇게 여전히 '배우'로 건재해있었구나, 하는 걸 확인하기도 했고.

맥스무비에 영화해설이 너무 잘돼있으니 줄거리 적느라 애쓸 것 없이 복사해 붙여놓기로 하자.

 

그냥 단순히 보면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인 배우의 비애에 관한 이야기.

그 배우는 주어지는 한 역, 한 역을 혼신을 다해 하루 종일, 쉴 새도 없이 바삐 바삐, 분주히 연기를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일일 뿐이고,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고, 무지 피곤해 보이고 또 다른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분장을 바꾸는 리무진, 홀리 모터스에서 그는 자주 '이젠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되뇌인다.

그의 '나의 인생'은 어디에 있나.

새벽에 시작해 자정이 넘어서 끝나는 하루의 시간 중에서 진정 그 자신의 삶의 시간은 배역과 배역 사이의 리무진에서의 그 짧은 짬들 뿐일까.

일이 끝나고 일당을 받고 돌아가는 집조차 또 하나의 주어진 배역이니...

한편 발레리나가 꿈이었다는 리무진 기사는 차고에 차를 넣고 그녀 역시 바빴던 일과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얼굴에 푸른 가면을 쓴다. 그 가면으로 그녀는 어떤 연기를 시작하는 참인가?

영화의 주인공은 차례차례로, 해설대로라면 11개의 배역을 연기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꺼번에 몇개의 가면이라도 동시에 쓰고  동시다발의 연기를 하는 건 아닌지? 그것이 가면인지도 모르는 채로, 하는 생각.

역시 무지 무지 바쁘게, 시간에, 스케줄에 쫓기며 최선을 다해도 어차피 허상, 허구일 수 밖에 없는 그런.

그래서 영화는 화두처럼 '진짜 나, 삶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감독이 제시하는 의미심장해 보이는 여러 상징들이 다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 이게 뭐지? 하는 의문때문에 흥미진진히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호텔방의 노인이 파자마바람으로 벽을 열고 나가니 거기가 바로 극장이던 장면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것 같은 모호한 서술은 왠지 하루키가 생각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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