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아포리즘들은 사람을 유혹해.
하지만 그 정도에 혹하기엔 내가 너무 나이 들었나보다.
옆에선 두 손 모아 턱을 괴고(흔히 '나가수', 나 '불후의 명곡'을 보면 방청객들이 그러듯) 진지하게 집중할 때, 난 팔짱을 끼고서 흐음--
불면증에 시달려 밤새 혼자 체스를 두며 매일 지리한 일상을 이어가는 교사 그레고리우스.
어느 비 몹시 몰아치던(난 그 비, 보고싶더라..) 출근 길, 다리 위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던 한 여자를 구한다.
그 여자는 빨간 코트를 남겨둔 채 사라지고,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찾아낸 한 권의 책에 감동한 나머지 수업을 하다말고 그 저자를 찾아 무작정 리스본행 기차를 탄다.
그리곤 저자의 집과 그를 알았던 지인들을 찾아, 레지스탕스에 투신하고 불같은 사랑에 빠지며 불꽃처럼 살았던 한 남자의 삶의 궤적을 쫓고, 그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게된다, 뭐 그런, 그 후 비로서 그는 곤한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오래 쓰던 안경을 박살내고 새안경으로 명료한 시야를 얻는 것 처럼 인생의 새 지평을 얻는다... 뭐 그런 얘기.
(확실히 불면증은 뭔가 삶의 불연소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 타야될 것이 제대로 못타오르고 검은 연기만 뿜어 올릴 때 그 매캐함이 불면을 부르는지도...)
그런데 영화를 너무 쉽게 만들어버렸다. 스토리의 전개가 단조롭고 단선적이라 말하고자하는 내용만큼의 감동이 없었다.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기시작했지만,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점점 잡생각들이 모락모락...
그레고리우스가 흔적을 좇는 책 저자의 이름이 아마데우인데, 희안하게 딱 모딜리아니를 닮았다. 앞으로 모딜리아니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냥 그 사람을 쓰면 될 것 같을 정도로. 감독이 알고 일부러 캐스팅한 건지, 우연인지, 그런 생각...
얘네들은 스위스에서 포르투갈 가는 게 무슨 우리 KTX타고 부산 가는 것 만큼이나 간단하구나, 그런 생각..
10년이면 상전이 벽해가 되는 변화무쌍한 나라에 살아서인지, 몇십년이 지나도록 거기 살았던 사람들이 그대로 그 장소에서 삶을 영위하며 나이들어갔다는 것도 희안하고...
또 1970년대에 포르투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레지스탕스라는 존재들이 있었지? 하는 생각...
검색해보니 포르투갈도 40년간의 독재를 겪은 후 1974년에 무혈쿠데타로 겨우 민주화됐단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게 그때의 시대상들이었다.
그걸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영화속에서 장례식때 아마데우의 관을 빨간 카네이션으로 덮던게 그 이유였나보다.
독재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고통당하고, 혁명을 꾀하고, 그 와중에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으며 어려운 시절을 관통해온 사람들의 삶과 그 시대를 묘사하고자한 게 영화의 메인 축이었던 모양인데, 그닥 내게는 깊게 다가오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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