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anini: The Devil's Violinist (2013)
Io Ti Penso Amore (나 그대만 생각해, 내 사랑)
feat Andreas Dedecke
나 그대만 생각해, 내 사랑
넘실대는 바닷물에 태양빛이 눈부실 때
나 그대만 생각해, 내 사랑
고요한 호숫가에 달빛이 은은할 때
오, 내 사랑.
길 먼지만 일어도 그대모습 아른 거려
길가는 저 나그네 혹시 그대는 아닐까
깊은 어둠이 깔리고 적막한 밤이 되어도
나 그대만을 느껴, 내 사랑
어둠을 뚫고 오는 그대의 강렬한 느낌
무거운 침묵속에 나 어디로 가야하나
고요한 숲속으로 발길을 옮겨보네
손도 닿을 수 없는 이리 먼 곳이건만
내 곁에 들리는 건 그대의 숨소리뿐
그 사랑은 여기에
내 가슴 속에
Io ti penso amore
Quando il bagliore del sole Risplende sul mare
Io ti penso amore
Quando ogni raggio della luna Si dipinge sulle fonti
Io ti vedo Quando sulle vie lontane Si solleva la polvere
Quando per lo stretto sentiero Trema il viandante
Nella notte profonda
Nella notte profonda.
Io ti sento amore
Quando col cupo suono Si muovono le onde
Nel placido boschetto caro Spesso ad ascoltare seduto c'è
Io sono con te Anche se tu sei lontano
Sei vicino a me Anche se tu sei lontano
O fossi qui
O fossi qui
http://www.youtube.com/watch?v=a66X_Lav_ts&feature=player_detailpag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GjLXHOAUVIc
데이비드 가렛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는 걸 알게 한 영화지만 굳이 영화를 볼 생각은 안했었는데, 마침 'daum영화'에서 31일까지 100편의 영화 다운로드를 50%할인해 준다길래 그렇다면 이 참에 몇 개 골라볼까 싶어 본 영화.
영화는 너무 잘 만들지도, 그렇다고 아주 엉망이지도 않고, 그냥 파가니니라는 한 인물의 삶을 무난히 묘사했다는 생각.
영화 자체보다 영화 속 음악때문에 재미있게 봤는데, 그 중 압권이었던 아리아, io ti penso amore.
여주인공의 청아한 목소리와 그를 받쳐주는 데이비드 가렛의 연주가 너무 아름다워 감동이었다.
또 귀에 그 멜로디 한참 걸려있게 생겼다.
기억나는 영화 속 대사 하나, '신은 내게 재능을 주고 나를 버렸다'. 그를 말해주는 적절한 한 마디가 아닐지.
더불어 파가니니도 궁금해져서..
인기를 한몸에 받는 우상이었던 그는 명인들이 지니는 낭만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바이올린 연주 기교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뒤로 지방의 바이올린 연주자 G. 세르베토에게, 그다음에는 유명한 자코모 코스타에게 지도를 받았다. 1793년에 데뷔했고 그후 파르마에서 알레산드로 롤라와 가스파레 기레티에게 배웠다. 1797년 아버지와 동행하여 롬바르디아 순회연주를 했는데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곧 아버지로부터 독립했으나 도박과 연애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한 번은 빚 때문에 바이올린을 저당잡히기까지 했고 그 소식을 듣고 그에게 구아르네리 바이올린을 빌려준 프랑스의 상인 덕택에 겨우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 상인은 그의 연주를 듣고 그 바이올린을 파가니니에게 주었다.
1801~07년 그는 새로운 특징이 돋보이는 기교를 선보인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곡의 카프리치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6곡의 소나타 작품 2, 작품 3을 썼다. 1805년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나폴레옹의 누이 엘리자 보나파르트 바치오키의 추천을 받아 피옴비노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되었다. 후일 이탈리아 여러 지방을 돌며 자신이 작곡한 곡들만으로 연주회를 개최했고, 1815년에는 무용가 안토니아 비안키와 오랜 친분을 맺게 되었다. 1828년 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1831년 파리와 런던 공연도 대성공이었다. 1832년에 가진 영국과 스코틀랜드 순회연주로 부자가 되었다. 1833년 파리에 정착해 베를리오즈에게 교향곡 〈이탈리아의 아롤드 Harold en Italie〉를 쓰도록 의뢰했으나 그는 이 곡의 비올라 독주 부분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연주하지 않았다. 그가 투자했던 도박장 카시노 파가니니가 실패하자 1839년 마르세유로, 나중에는 니스로 옮겨갔다.
파가니니의 낭만적인 성격과 모험심은 그가 살던 시대에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에 얽힌 전설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그가 악마와 결탁하고 있다거나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 나왔다는 등 소문이 무성했으므로 그가 죽은 뒤에도 정식으로 묘소에 묻히기까지 5년간이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오랫동안 욕심쟁이 수전노로 여겨져왔으나, 그에게 의존적이며 그의 너그러움을 이용해 끊임없이 도움을 요구하던 추종자들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썼던 그의 열망을 헤아려본다면 그를 좀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작곡가 베를리오즈에게 그가 2만 프랑을 선사했던 것은 별 특징도 없는 관대함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아마도 파가니니는 '베토벤의 후계자' 베를리오즈의 가치있는 재능을 인식하고 그 작곡가를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주로 카프리치오, 바이올린 협주곡, 일련의 변주곡 등에 바탕을 둔 그의 바이올린 기법은 운지법과 심지어 조율에서조차 새로운 피치카토 효과와 화성을 폭넓게 사용했으며 눈부실 정도의 즉흥 연주를 보여주었다. 또한 1~2개의 바이올린 현을 끊어버리고 나머지 현 위에서 작품을 계속 연주하는 것 같은 재주를 부렸던 훌륭한 연예인이기도 했다. 그가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은 바이올린 기법은 후대 거장들, 특히 파블로 사라사테와 외젠 이자이 등이 모방했다. 그밖의 작품들로는 제1곡인 D장조 협주곡이 특히 인기를 모았던 바이올린 협주곡 6곡,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12곡, 바이올린·비올라·첼로·기타를 위한 4중주 6곡이 있다. 그가 일으킨 기법상의 영향은 피아노 음악뿐만 아니라 관현악에도 미쳤고 특히 그가 리스트에게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카프리치오의 주제들은 리스트·슈만·브람스·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도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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