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크리스테바, 세잔의 사과.

바다가는길 2016. 5. 5. 20:03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우울과 멜랑콜리아>는 멜랑콜리의 심리구조를 가진 예술가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고 멜랑콜리를 예술의 상징활동으로 승화시키는지를 추적한다. 우울에 깊이 빠진 절망적인 상태의 예술가들이 왜 자살하거나 정신병동으로 가지 않고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들이 창조하는 역설의 미학은 고통스런 아름다움을 지닌다. 일종의 경외감을 자아내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런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이처럼 어두운 미학에 대한 은유,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시적 개념을 네르발의 시 '검은 태양'으로 은유한다. 

...섬광을 발하는 어두움은 검은 비가시성을 갖고 반짝이는 것이다... 이 검은 태양의 의미는 나타남과 사라짐, 가시계와 비가시계, 기호와 무의미 사이의 경계 경험을 뜻한다. 


-우울증의 담론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신이상적인 위험의 '정상적' 표면이다. 우리를 압도하는 슬픔, 우리를 마비시키는 지연(retardation)은 또한 하나의 방패인데 때때로 가장 최종적인 것, 즉 광기에 대한 방패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주체가 언어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인 모성과의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멜랑콜리아에서는 이것이 완성되지 않는다. 모성과의 분리가 성공적이지 못하고 원초적 나르시시즘의 온전치 못한 기능으로 형성되는 멜랑콜리아에서는 슬픔이 압도한다. 나르시시즘적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부 대상과 맺는 관계가 여의치 않은데, 크리스테바는 사실상 그들에게 유일한 대상은 슬픔이고, 이것이 대체 대상(substitute object)으로 자리잡는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모체로부터 태어나 사회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넘지 않으면 안 될 과제가 있다. 

모성으로부터의 분리는 처음에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고립감과 불안감을 준다. 보통의 경우, 엄마와의 분리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주체는 그 상실감을 조금씩 극복해간다. 엄청난 상실의 고통도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점차 잊혀진다. 사회의 언어체계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발화 주체는 사실상 모성을 상실한 대가로 사회에서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멜랑콜리는 이러한 '정상적'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경우이다. 문제는 상실에 있다.  멜랑콜릭들은 상실을 힘들어하고, 결국 자신이 잃어야 할 대상을 잃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모성과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중요할까 . 영어권에서는 mother를 '(m)other'로 표기하여 최초의 타자로서의 어머니를 병기하는 방식이 통용돼 왔다. 어머니가 주체에게 중요한 이유는 주체가 경험하는 최초의 타자가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던져진 주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그가 어떻게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일차적 타자인 어머니와의 관계가 중요할 수 밖에 없고, 이 관계는 주체의 기본적 심리구조를 결정한다.

모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모성을 제대로 잃어버리는 것. 모성으로부터 순조롭게 분리된 주체이어야 사회의 언어구조에도 제대로 적응한다.

모성으로부터의 분리가 완성되지않는 멜랑콜리 유형의 사람은 반언어적인 심리구조를 지닌다. 슬픔이 그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상태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깊고 복합적이다. 근본적으로 멜랑콜리 심리의 구조적 문제는 주체가 대상이나 외부세계와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데 있다...크리스테바를 연구한 존 레히트는 멜랑콜리가 "특별한 종류의 대상관계"라고 전제한 뒤, 멜랑콜리 주체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대상을 아예 갖지 못한다고 덧붙인다. 크리스테바도 우울한 사람에게는 오로지 슬픔만이 유일한 대상이라고 말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슬픔을 소중히 여기며 간직한다. 고통은 안고 사는 그들의 문제는 그 고통의 내용을 물질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허깨비와 같이 잡을 수 없는 어떤 것과 계속적으로 씨름한다. 일찍이 네르발은 '검은 태양'이라는 은유로 이 허깨비를 시적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전영백, '세잔의 사과'-현대 사상가들의 세잔 읽기 중.


세잔의 사과


-『세잔의 사과』는 미술과 연관되는 철학적 사고와 정신분석학적 인식을 활용하여 그의 작품 깊숙히 들여다본다. 세잔의 미술세계를 현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여섯 명과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그문트 프로이트, 조르주 바타유, 질 들뢰즈, 자크 라캉,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세잔의 작품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여섯 사상가들의 시각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도는 작품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고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여섯 명의 사상가들은 공통적으로 세잔 스스로가 캔버스를 앞에 두고 고민했던 화두에 대해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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