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마르탱 파주

바다가는길 2016. 6. 23. 22:03

비마르탱 파주 저/발레리 해밀 그림/이상해 역 | 열림원 | 원제 : De la pluie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작가의 비 예찬론.

너무나 너무나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때론 귀엽고 익살스러운  비에 대한 단상들.

웃음 모자란 날들에 저절로 피식 피식 새어나오는 기분좋은 웃음을 준다.

정원이 예쁜 어느 한적한 카페, 초록 풀잎들 위로 또닥 또닥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 에스프레소 향기 마시며 조용히 읽으면 참 행복할 책.

 

 

비는 세상이 잠시 정지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패스워드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그건 다름을 긍정하는 것이다.

 

가끔 비는 나를 대상 없는 사랑에 빠져들게 한다. 어느 날, 관자놀이를 쳐대는 피, 콩닥거리는 가슴, ...비는 전조의 효력을 가지고 있다....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예보를 무색하게 만들며, 느닷없이.

 

비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사건들의 보석상자다.

비가 내리면 그날 하루는 더 이상 일에도, 서로가 나누는 진부한 말에도, 식사나 여행에도 속하지 않는다. 잎들이 몸을 떨고, 우산들이 펼쳐진다. 카페, 영화관, 그리고 서점들이 가득 찬다.... 우리는 되는 대로 서툴게 대비한다. 두건, 신문지, 외투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빗속을 달린다. 문득  행선지에 관한 온갖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본다. 삶의 리듬이 깨진다. 균열이라 말할 수조차 없지만, 갑자기 우리는 시적 무정부상태가 도래하는 것을 보며 기쁨을 나눈다.

 

한 시간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작은 바다 하나의 부피와 맞먹는다.. 대양은 우리가 그의 심연에서 나왔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흔적을 좇아 우리를 찾아왔다. 새로 색종이 조각들 형태를 취한 대양을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양의 비를 맞으면 나는 늘 마음이 편하다. 그것은 나를 안심시켜주고 진정시켜준다. 그러고 있으면 나는 안전하다. 반면 공기로부터 우릴 구해줄 수 있는 해안 감시선, 해양 구조요원, 구명 튜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언제 어떻게 침몰할지 모르니 비가 없는 공기 속에서도 헤엄을 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폭풍은 매일 불어닥친다. 사람들이 질식한다. 거리와 가게에는 기아와 부종으로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다.

상어는 우리의 일상이다.

 

비는 천하무적이다. 우리의 집중력이 훌륭할 때, 그것은 자신이 견고한 요소임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시들어 사라진다. 그래도 비는 남는다. 백금보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하게. 나는 광대하고 고요한 그것을 느낀다. 나는 그 옆구리에 등을 기대고, 그 너그러운 괴물의 호흡에 귀를 기울인다.

 

비는 잔치를 망친다... 그것은 음악축제, 불꽃놀이, 혁명 기념 퍼레이드, 올림픽 대회를 망쳐놓는다...

그 의무적인 기쁨들 속에 약간의 자유가 슬쩍 끼어들 것이다. 모든 비에는 혁명을 탄생시키는 원리가 녹아 있다.

 

..물론, 이젠 어른이 된 듯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가장해 도랑에 발을 빠뜨리고는 짜증이 난 것처럼 연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튀는 물에 젖는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바지, 양말이야 젖건 말건. 어린 시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우리는 남몰래 지저분한 개구쟁이로 되돌아가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한다.

 

비에 대한 내 사랑은 태양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나는 소수의 편에 선다. 비는 왕따당하는 천덕꾸러기, 운동장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외로운 아이, 거지, 팔레스타인, 유대인이다. 비는 주변부에 소외되어 있다.

나는 비가 마음에 든다. 다수가 싫어하기 때문에. 비는 범죄, 가난, 질병과 같은 열에 세워진다. 추함, 흉악함과 나란히 서서 악을 상징한다. 비에 대한 혐오감은 가난한 자들과 다름에 대한 증오를 감추고 있다. 여행가이드 책자에는 비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 어김없이 표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태양을, 아름다운 경관을 원한다.

태양은 눈을 내리깔도록 강요하는, 늘 켜져있는 플래시다. 그것은 복종의 상징이다...

이 '아름다운 날씨'라는 개념을 비판해야만 한다. 그것은 큰 키에 금발,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지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자. 그것은 아리아족이다. 정신의 나치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후가 여기 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독서를 하고, 영화관에 가고,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예술가들은 작업을 하고, 병사들은 막사에 머문다. 그럼 비가 오지 않을 때 그 남녀들은 과연 무엇을 할까? 그들은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고, 옷가게 진열창 앞을 서성이며, '가든파티' 와 대량학살을 준비한다..

...군인과 관광객은 하나같이 제복을 입고 무기로 무장한다. 전투복과 반바지, 총과 사진기.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사랑은 드물어진다. 아무도 착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구두 굽의 압력이 비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기를 희망하며 자주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나는 구름의 사격을 촉발시키는 비밀단추들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하수구 뚜껑의 귀퉁이, 인도 가장자리, 포석 사이의 틈...... 어쩌면 금고의 번호 조합처럼 일련의 단추를 순서대로 밟아줘야 할지도. 나는 <싱잉 인더 레인>에서 사랑에 빠진 진 켈리가 보도에서 춤추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는 비결을 찾아낸 것이 분명하다.

이 진실을 받아들일 경우, 부정확과 착오의 과학인 기상학은 훨씬 더 큰 과학성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해류, 기압, 대기온도도 날씨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오로지 우리의 감정을 암시하는 발걸음뿐이다. 우리는 구두 굽으로 하늘에 영향을 미치는 음악을 작곡한다.

비를 내리게 하려면 좋은 구두가 필요하다. 질 좋은 신발을 만들어내는 나라, 영국에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혹성처럼 우리 몸도 70퍼센트의 물을 함유하고 있다. 우리 내부의 물방울들은 자력의 원리에 따라 하늘에서 떨어진 자매들에게 이끌린다... 비가 인간이 사는 곳에 떨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만남은 가족간의 재회다.

...인류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바다다... 물은 우리의 혈관, 뼈, 그리고 꿈 속에서 쉰다.

 

나는 칼베거의 호베라벨리 온천지대에서 마셨던 차를 떠올린다. 아이슬란드 전통에 따라, 그것에서는 검은 차가 든 쇳잔을 뜨겁게 달궈진 땅 위에 올려놓고 비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비가 내린다. 잔이 가득 찬다. 물이 끓어오른다. 차가 우러난다. 동시에 내 감정들이 내 몸에서 넘쳐흘러 마치 나 자신이 우러나는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간다. 비에 닿으면 모든 것의 향이 해방된다.

 

..하늘에 그어지는 빗줄기는 우리를 받쳐주는 기둥이다. 그것은 비틀대는 우리의 소심한 다리를 지탱해주는 은 손잡이 달린 지팡이다.

 

수천개의 손가락이 수천 개의 건반을 두드린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꿈꾸면서, 먹으면서 비의 리듬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의 집중력 속에 새겨지고 창조에 참여한다. 이야기들은 비가 올 때 씌어진다...

오로지 화가들만이 태양 아래서도 살아남는다. 그들은 꽃 색소와 동물 털을 이용해 태양을 생포한다.

화가는 빛과 땅의 존재이고, 작가는 대양의 피조물이다. 우리의 잉크는 심해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오징어로부터 온 것이다.

 

...보물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런데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마술을 보지 못하는 못된 재능 탓에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오히려 자주 그것을 저주한다.

 

...비가 문을 두드린다. 우리가 거기 있는지 알기 위해 작은 주먹 수백만 개로 문을 두드린다. 그렇다. 우린 거기 있다. 우리는 문을 열고, 현관 계단에 서서 그를 맞이한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턱을 들어올린다. 우리가 쳐다보는 즉시, 비의 주먹들이 변모해 눈처럼 열린다. 빗방울들이 처음에는 우리 모습에 깜짝 놀라, 하지만 곧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공모의 윙크를 보낸다. 우리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달아난다. 하지만 비는 우리를 쫓아온다. 비는 우리의 변덕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자유, 고독, 죽음을 피해 달아나며 우리 삶을 보낸다.

 

...비가 내리면 우리는 발아한다. 비옥함은 정신의 한 자질이다. 새싹, 떡잎, 생각들이 자라난다. 우리는 그 과일들을 수확한다.

 

...언젠가 천체몰리학자들은 이 명백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는 떨어지면서 지구를 밀고 돌아가게 한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는 것은 바로 비 때문이다.

 

나는 내 몸에 비의 지문이 찍히는 걸 좋아한다. 그것들은 내 전쟁화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루즈 자국이나 금줄을 뽐내듯, 나는 내 셔츠 목깃에 묻은 그것들을 뽐낸다. 내 옷이 그것들을 포로로 붙잡는다. 그 방울들은 보석과 같다. 나는 잠시 내 위에 내려앉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귀한 보석들이 자랑스럽다. 그것들은 금방 하늘로 돌아간다.

 

비를 맞으면 내 전 존재가 끓어오른다... 내 몸은 사라짐으로써 하나의 현존을 얻는다. 나는 자연과 관계를 맺는다. 빗방울들이 내 피부 위에 떨어져, 늪의 수면 위에서처럼, 내 심장까지 은은히 울려퍼졌다 사라지는 동심원들을 그려놓는다.

 

음악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비와 음악은 같은 기능을 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듣지 않을 자유와 들리지 않을 자유를 준다.

 

비는 여행이다. 문명, 피신처, 천장들이 날 떠난다. 비가 기차처럼 역으로 들어온다. 나는 플랫폼에 서 있다. 몰랐지만 나는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비를 맞이하고는 그것이 브라질에서, 중국에서, 핀란드에서 온 것이라고 상상한다. 나는 내 비의 형제누이들을 생각한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아프리카 호수, 벨기에 맥주, 어린 병사의 땀방울 혹은 여공의 눈물방울로부터 온 것이다.

 

자연현상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바이런은 번개를 쓰다듬었고, 이백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껴안았다. 셀리는 파도 속에서 잠이 들었고, 엠페도클레스는 용암에 취했다. 비는 우리의 품에 떨어져 우리를 껴안고는 훌쩍 가버린다... 비는 기다리지 않을 때 불쑥 내린다. 그것은 슬픈 시간들을 폐지시킨다... 충실한 동반자인 비는 어디든 우릴 따라다닌다. 삶이 끝나갈 때 우리는 똑똑 떨어지는 링거 주사약에서 그것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비는 베일이다... 비는 그것이 떨어지는 곳을 부각시킨다. 보는 것, 그것은 시각을 어떤 대상에 구속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비전은 아무것도, 말하자면 대단한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우리가 장님이 아니라는 증거 정도. 하지만 눈의 표면을 빗방울, 안개, 혹은 화염으로 덧씌우면 세상이 다르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비는 풍경과 건물들을 미화한다. 성격을 부여해주고, 건축가들의 재능부족을 메워준다. 비는 전쟁과 재앙에 의해 야기된 피괴들을 고쳐준다. 그것은 묘지들을 드러내고 깨워준다. 우리는 말없는 자들의 시위를 지켜보게 된다. 아무 슬픔 없이, 죽은 자와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의 영혼이 우리에게 안부를 전한다.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빗방울이 떨어진다고. 그 진부한 사실 확인 너머에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고, 아니면 자살?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비는 다시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저 높은 절벽에서 미끄러졌다. 우리는 그것을 구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우리 위에, 딱딱한 바닥보다는 우리의 부드러운 피부 위에 떨어지도록 거기 있어주는 것이다. 나는 손을 벌리고 고개를 들어 그것을 맞는다. 그것은 내 품에서, 내 가슴에 부딪혀, 내 얼굴 위에서 죽는다. 나는 그의 유해를 맞아들여 마지막으로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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