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재단 40 주년 특별전
<Whanki, From Modern To Contemporary>
행사 : <Whanki, From Modern To Contemporary>
일시 : 2019년 4월 5일(금) ~ 7월 7일(일)
장소: 환기미술관 본관
환기미술관은 ‘환기재단 설립 4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김환기(1913~1974)의 시대별 대표작을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의 시작과 성장과정을 되돌아보는 본 전시를 기획하였다.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의 시작과 성장은 김환기와 맥(脈)을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김환기는 1930년대 일본 도쿄에서 현대미술을 수련하고 1940년대부터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가 그룹이자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1947~53년까지 활동)를 만들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서양미술이 안착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는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 파리와 뉴욕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현대미술 흐름을 예술가로서 때로는 예술행정가로서 우리나라에 소개하였다. 특히 1970년에 시작된 ‘한국미술대상전’은 국전인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버금가는 대규모 재야미전(在野美展)으로 초대작가로 선정된 김환기는 전면점화(全面點畵) 추상회화작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제1회 대상을 수상한다. 이로써 추상미술이 우리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고 발전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현재 남아 있는 김환기의 가장 초기작품인 <집>(1936)과 파리 활동 시기 대표작 <매화와 항아리>(1957),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섬의 달밤>(1959)과 대표 점화 연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1970), 그리고 김환기의 마지막 작품 <7-VII-74>(1974) 등이 섬세함과 위트가 가득한 드로잉들과 함께 전시된다.
환기재단 40주년 기념전. 전시회는 4월에 시작돼 3개월도 넘게 진행됐지만 미적거리다가 마지막 주에야 겨우 놓치지않고 전시회를 볼 수 있었다.
부암동 고개 밑에 자리하고있는 환기미술관은 언제 가도 조용한 분위기에,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꼭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환기의 그림을 보고싶으면 언제라도 가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든든한 느낌이다.
요즘 들어 비로서 김환기의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 같아 너무나 뿌듯하다.
그의 작품이 최고 경매가를 갱신했다는 뉴스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그대신 예전에 아무 감시자(?)도 없이 커다란 전시실을 혼자 독차지하고, 어마무시한 그림 앞에 코를 박고, 보고싶은만큼 맘껏 그 그림들을 향유하던 시간, 오직 그림과 나만 대면하던 그런 호사는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게 아쉽다.
관람객도 예전보다 많이 늘었고, 전시실마다 행여 비싼 그림을 상하게하지나 않을까 관람 라인이 생기고 방마다 안내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람자들을 감시(?)하니 아무래도 예전의 호젓함이나 집중감이 덜하다.
전시는 그의 초기작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시대별 특징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에스키스며 과슈작품들, 종이조각 몇도 있었고, 별관인 수향산방에는 그가 쓰던 그림도구들, 수첩, 그간의 전시회 카탈로그, 또 그의 화실을 재현해 놓은 방도 있었다.
물감으로 빼곡한 이젤하며, 그가 입던 앞치마, 오래된 의자 위 검은 모자, 기타가 비스듬히 기대어있기도 하고...(아, 기타도 치셨구나), 실제 그가 어떻게 생활했었는지 그의 시간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
환기는 참 대단한 작가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한단계 한단계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나갔다.
항상 동양적인, 아니 한국적인 감수성을 놓지 않았고, 어느 시대의 어느 화풍의 그림이건, 마티에르감 풍부한 유화면 유화대로, 담백한 과슈는 과슈대로, 후기의 유화물감을 사용했음에도 수채화같은 질감을 갖는 그림들은 그것들대로, 색이면 색, 형태면 형태, 구성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 그 의미와 내용의 풍부함이 얄미울 정도로 모자람이 없다.
그런 세계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 게 분명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냥 생래적인 재능인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일 뿐이다.
몇 몇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남는 작품들, 인터넷에서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원하는 자료가 없네.
처음 보는 듯 싶은 그림도 있고 그랬는데..
언젠가 각지로 퍼져 나갔을 그의 그림들 모두 모이는 대규모 전시가 열리길 기다린다.
그러면 한 3일쯤 미술관에 출근하며 한 3일쯤 세상을 잊고 행복할텐데...
특히 더 맘에 들었던 작품들 중 겨우 구한 몇 몇 사진들....
산월
매화와 항아리
섬의 달밤
세레니티
무제, 4-llll-68 #8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7-vll-70 #186
air and sound
duet.
7-vll-74
검색을 하다보니 전시회 분위기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기사가 있어 대신 싣는다.
기자가 이 기사를 작성할 즈음엔 꽃 만발했던 모양이나 내가 갔을 땐 화단 한 쪽에 나리와 푸른 도라지꽃이 새초롬히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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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이르는 길목부터 특유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만끽해볼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한다. 부암동 자락 고즈넉이 자리 잡은 ‘환기미술관’이 오늘의 주인공. 환기미술관에서 최근 개최된 전시 포스터는 김환기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매화와 항아리’(1957)로 꾸며졌다. 본관 정면 벽에 걸려 있던 그림 속 매화와 건물 앞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그 평화로움을 배가하면서 부쩍 따뜻해진 봄을, 그리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환기미술관 본관 입구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이곳보다 더 그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오늘날 김환기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 서 만나볼 수 있지만, 평생의 뮤즈였던 김향안이 직접 설립한 환기재단, 그리고 환기미술관만큼 그를 잘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는 곳은 또 없을 것이다. 환기재단을 설립한 김향안은 1974년 김환기 작고 직후부터 파리와 뉴욕에서 재단 활동을 시작했고 마침내 1979년 3월, 미국 뉴욕 주에 ‘비영리법인 환기재단 Whanki Foundation, Inc.’을 정식 등록한 후 1992년 11월 서울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했다.
전시 도입부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올해는 이렇게 설립된 환기재단이 40주년을 맞는, 조금 더 특별한 해다. 이를 기념하며 환기미술관은 4월 5일부터 7월 7일까지 ‘환기, 모던에서 컨템포러리로(Whanki, From Modern to Contemporary)’전을 개최했다.
김환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김향안은 김환기의 시기별 대표 작품들을 환기재단에 남겼다. ‘환기, 모던에서 컨템포러리로(Whanki, From Modern to Contemporary)’ 라는 타이틀로 개최된 이번 전시는 현재 남아 있는 김환기의 가장 초기 작품인 <집>(1936)과 파리 활동 시기 대표작 <매화와 항아리>(1957),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섬의 달밤>(1959)과 대표 점화 연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1970), 그리고 김환기의 마지막 작품 <7-VII-74>(1974) 등을 선보인다.
본관 입구 | 사진제공 환기미술관
이번 전시의 미덕은 앞서 언급했듯 ‘김환기적 고요함’이다. 공간을 천천히 거닐면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나의 내면 이야기에까지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몇 가지 요소들 덕택이다. 필자가 예찬하고 있는 이곳의 ‘고요함’이 궁금하다면, 직접 미술관을 방문해 느껴보시길.
“오롯이, 그림”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이곳에는 ‘작품 설명’이 없다. 전시 도입에 환기미술관의 역사를 짧게 기술하고 김환기의 간략한 연대표를 새겨놓은 것을 제외하면 그의 그림을 직접적으로 해석해놓은 글은 찾아볼 수 없다. 3층에 이르는 전시공간 중간중간에 김환기의 일기나 시를 발췌하여 실어둔 것이 전부. 이는 오롯이 그림에만 빠져들 수 있게 한다. 그의 짤막한 글이 김환기를 더욱 생생히 느끼도록 돕는다.
“김환기의 ‘세레니티(Serenity, 고요함)’”
무엇보다도 김환기의 작품 자체가 고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화 김환기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는 이를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예술가’로 불렸다. 20세기 초반부터 한국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고유한 조형언어를 창조해 한국 추상미술의 선두에 섰으며, ‘전통미를 현대화한 세련된 화면구성으로 ’조형시詩‘를 창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그의 그림들은 정말 ‘시詩’로서 존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3층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그의 활동 시기를 크게 ‘동경, 서울시대’ ‘파리 시대’ ‘뉴욕 시대’로 구분하여 김환기 작품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전시 도입부 김환기 연표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동경, 서울 시대 (1933-1955)
김환기는 1933~7년 동경에서 유학 생활을 지냈다. 이 시기 그는 일본 추상미술의 중심에서 순수 조형의 구상적 회화를 발견한다. 일본 화단의 전위를 표방하는 ‘아방가르드 양화 연구소’ ‘이과회’ ‘백일회’ ‘광풍회’ 등의 그룹에 참여하면서 재현적 사실주의와는 결이 다른 ‘추상적 요소’가 가미된 입체주의, 구성주의의 화풍을 수용하였다. 또한 한국적 소재를 단순화한 화면 구성에서 점점 기하학적 형태의 순수한 조형세계로 변화해 나갔다. 1930년대 청년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자연의 향토성과 음악적 반복의 리듬감,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밝은 색감 등 한국적인 서정성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확립했다.
김환기의 작품들 중 가장 이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집’(1936)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1937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환기는 도서의 표지화나 삽화를 그리고 수필이나 전시 비평글을 발표하면서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한국의 전통, 골동과 서화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수집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시기 평생의 뮤즈이자 배우자인 김향안을 만나 서울 성북동 ‘수향산방’에서 신접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문화 예술인과 교류하며 ‘전통에 대한 미의식’을 키우고, ‘한국의 미’를 발견했다. 해방 직후에는 유영국, 이중섭, 장욱진, 백영수, 이규상 등과 ‘새로운 사실을 표방한다’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예술에 대한 이념과 조형적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1950년대 작업에서는 김환기를 특징짓는 그림 소재들이 등장한다. 산, 달, 나무 그리고 사슴, 매화, 둥근 백자 항아리 등은 정물화와 풍경화의 구분 없이 한 화면에 한국의 자연을 표상하는 조형요소로서 구성되었다. 이 시기 그의 화면을 구성하던 반추상의 간결한 선들은 점차 색면으로 변주되어 나아간다. 하지만 이내 다시 선으로 돌아왔다. 마치 자연물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과도 같이 조형의 구상적, 추상적 표현의 자연스러운 공존을 암시하는 듯하다.
■파리 시대 (1933-1955)
김환기는 일찍이 한국고미술에 대한 애착과 수집열이 대단했다. 그가 가장 애정 했던 것은 둥근 항아리. 때때로 항아리들을 마당에 내다가 초석 위에 올려놓고 감상했고, 백자 항아리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귀하게 여겼다. 조선백자는 순수한 자연의 모습, 그리고 절제와 지조가 내재되어 있는 조형물이었는데, 김환기는 이 담백하고 무심한 아름다움을 가진 항아리를 자신의 50년대 회화 작품의 중심 모티브로 승화시켰다.
김환기_1957_매화와 항아리_캔버스에 유채 | 사진제공 환기미술관
김환기가 백자 항아리와 함께 즐겨 그렸던 소재는 산월풍경이다. 195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그려졌던 이 주제는 그의 예술관과 회화의 양식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작가는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로 산봉우리와 우거진 숲, 둥근 일월과 일렁이는 구름, 흘러가는 강과 바다 등을 표현했다. 그는 특히 단색조의 바탕 위에 이를 구현하는데 여기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푸른 청색은 계속 언급하고 있는 ‘김환기적 고요함’의 원천으로도 느껴진다.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詩 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 김환기, 1957년 1월 파리에서
파리로 건너가 작업을 하면서 작가의 전통적 조형미와 색질감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각별해졌다. 자연의 외형에서 출발해 보편적 개념의 형태로 단색조의 무한 공간을 창조하여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의 단면을 구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뉴욕 시대 (1933-1955)
김환기 1972년 작 붉은 점화 ‘3-Ⅱ-72 #220’은 한국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치솟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 점화 시리즈는 바로 뉴욕에서 활동하던 중 탄생했다.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 김환기, 1968년 1월 뉴욕에서
이 점화시리즈는 전시관 1층에서부터 만나볼 수 있다. 생각보다 큰 캔버스에 꽉 채워진 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청난 압도감이 느껴진다. ‘이 수많은 점을 찍으면서 대체 김환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하고 궁금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답을 전시관 한 층, 한 층을 올라가면서 얻을 수 있다.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김환기는 점을 표현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한다. 과슈와 콜라주, 그리고 파피에 마쉐, 오브제, 종이에 유채, 드로잉 등과 같이 재료와 양식의 범주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는 70년대 들어서면서 화면 전체를 점으로 뒤덮는 ‘전면점화’로 발전되었다. 전면점화 시리즈는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넓고 아득한 바다와 하늘 풍경을 연상시킨다. 묽은 유채 물감으로 선을 긋고 담채를 연상시키는 점을 찍음으로써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우주적 공간을 형상화했다. ‘김환기적 고요함’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는 점을 반복해서 찍음으로써 선이 되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면이 되는 과정도 주목했다. 개별적인 요소로서보다는 융합된 하나의 조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점은 화면에서 번지고 얼룩지면서 하나하나가 개성을 지니면서도 풍부하고도 다양한 짜임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는 일정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지는 구성이 아니라 예기치 않는 잠재성을 드러내면서 태어나는 유기체이며 이러한 특성이 마치 화면이 숨을 쉬는 듯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무엇보다도 작가는 이국 땅에서 느끼는 오만가지 희로애락을 색점 하나하나에 위탁했다. 무심코 찍어가는 점이 아니라 점 하나에 그가 만난 인연과 자연, 음악 등 작가가 살아온 시간을 새긴 것이었다.
김환기_1971_14-XII-71 #217 | 사진제공 환기미술관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고 했다. 뻐꾸기의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섬에 보리가 누르렀다고 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 김환기 편지 중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김환기를 담은 그릇, 환기미술관. 건물에 숨겨진 비밀?”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건물을 지어 놓았다고 해도 미술관을 돌아보고서 깊은 감동을 주는 예술이 없을 때, 그 미술관은 아무것도 아니다.”
- 김향안, 설립자의 메시지
김환기의 작품, 그만의 고요한 감동을 배가한 것은 바로 환기미술관의 건축에 있다.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환기미술관 백승이 학예사는 미술관 건물을 탐구하고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건축가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적인 미술관 건축을 소개한 저스틴 핸더슨(Justin Henderson)의 ‘뮤지엄 건축’(Museum Architecture, Rockport, 1998)라는 책에도 수록되고, 1994년에는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김환기 작품의 여운을 이어받고 있는 이 공간에는 어떤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2층에서 바라본 메인홀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1988년 건립된 환기미술관은 서울 부암동, 북한산 기슭에 동서로 뻗은 좁은 계곡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설계자 우규승은 산, 달, 구름, 바위, 나무 같은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련됨이 있는 건물을 짓고자 했다. 김환기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작품에 내포된 정서가 재현된 미술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곧 관람의 시작이 되는 이유다.
2층에서 바라본 메인홀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또한 환기미술관의 주요 전시가 진행되는 본관은 성당의 구조를 바탕으로 했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메인홀의 4면을 둘러싼 계단은 그대로 3층까지 이어지는데, 정해진 동선은 없어 관객들은 자유롭게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 전시 공간에는 미술품의 보존 및 조명 조절이 용이한 인공조명을 설치하되, 모든 전시실을 잇는 계단에는 간접 일광을 도입했다. 또한 전시관 곳곳에는 ‘반달방’이라고 불리는 전시 공간이 있다. 한쪽 변이 곡선이 진 모습은 김환기의 그림 소재가 되곤 했던 ‘달’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품을 빛나게 한 섬세한 건축 설계를 맡은 우규승은, 사실 수화 김환기와 깊은 친분이 있었다. 우규승은 “수화 선생님은 생전에 가깝게 뵙던 분이어서 그분의 미술관은 내가 설계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한편 책임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느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환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김환기의 정서와 예술에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미술관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해 우규승은 “그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며 작업했다고.
3층 전시 전경.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김향안 여사가 김환기 드로잉(1972)을 바탕으로 프랑스 유리공방에 의뢰하여 안틱글라스 기법으로 제작한 채색유리.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환기미술관은 본관과 별관, 그리고 수향산방(달방)으로 구성된다. 티켓 오피스가 있는 건물이 별관인데 이곳 2층에서도 기획전시가 이루어진다. 김환기의 아호인 ‘수화’와 부인인 ‘향안’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수향산방’은 김환기기념관의 역할을 한다. 현재는 김환기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달관 수향산방 전경. 현재 전시 해와 달과 별들의 이야기 | 사진제공 환기미술관, 환기재단
http://www.khan.co.kr/allthatart/art_view.html?art_id=201904151025001#replyArea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1973년 10월 8일 김환기 일기 중
수화 김환기, 그의 작품은 일기에 남겨진 그의 말처럼 하늘, 바다, 산 바위의 느낌을 줍니다. 고요한 곳에 홀로 앉아있으면, 넋놓고 바라보게 되는 그런 자연경관처럼 말이죠. 특별해보이지는 않지만 그 순간에 우리는 큰 위로를 받거나 새로운 영감을 받곤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것이 김환기의 ‘특별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환기미술관 본관 ‘환기: 컨템포러리에서 모던으로’전 전경 | 사진제공 환기미술관
“달관(수향산방) 환기 인 뉴욕”
김환기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지만, ‘시詩’의 여운을 지닌 문장들을 꾸준히 써내려갔고, 직접 피리를 불거나 기타를 치며 음악을 향유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의 예술가였습니다. 특히 그의 일기의 가치는 ‘그림에 부치는 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책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김환기 일기 표지 1974년
김환기 생전에 구상한 아뜰리에의 형태를 반영한 달관. ‘수향산방’이라는 이름으로 더 사랑받고 있는 이곳에서는 수화 김환기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기 남긴 ‘일기’들을 토대로 한 전시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환기 호인 ‘수화’에서의 ‘수’와 김향안의 ‘향’을 하나로 묶어 지은 이름인 ‘수향산방’.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1963년 10월, 김환기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작고하기 전 10여 년간 그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뛰어난 예술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실험을 펼쳐나가며 평생을 바쳐 갈구해온 그의 추상미술을 완성하게 됩니다. 최근 더욱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시리즈가 탄생한 때가 바로 이 뉴욕에서 생활하던 시기였죠.
추상 작업을 위한 스케치 드로잉 작품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작가는 이 시기의 치열한 예술여정을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김환기의 뉴욕시대 일기는 1960~70년대 뉴욕의 문화경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도 남기고 있어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 또한 들여다볼 수 있죠. 무엇보다도 김환기의 일기는 작품의 시작과 완성, 관련 에스키스와 사용 컬러에 대해 꼼꼼히 기록한 작업일지적인 특성으로, 김환기 연구의 시작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환기가 뉴욕에서 생활하며 지니고 다닌 물건들. 상파울루에서 받은 상패와 여러 전시 팜플렛, 그리고 카메라와 안경, 시계 등.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뉴욕 시절, 김환기와 김향안은 각각 뉴욕과 서울에서 지냈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편지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을 전하곤 했다. 위 편지는 김환기가 향안에게 보낸 편지. ‘지금 뉴욕은 바람이 불고 추워요. 그러나 봄이여요.’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수화 김환기는 캔버스 틀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이에 사용한 김환기의 도구들. | 사진 올댓아트 박찬미
‘환기 인 뉴욕’전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세계와 작품에 대해 직접 기록해 놓은 일기를 통해 ‘작가 기록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중요한 전시입니다. 김환기의 친필 일기와 관련 작품, 그의 뉴욕 스튜디오도 새롭게 재현되어 있죠. 작품 에스키스와 일부 누락되었던 일기들이 수록된 새로운 ‘김환기 뉴욕일기’도 출판될 예정이라고 전해집니다.
올댓아트 박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