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저. 마음산책.
여든이 넘은 보르헤스가 이곳 저곳에서 진행한 대담집.
뮤즈, 혹은 성령으로부터 처음과 끝이 불현듯 주어지고 자기는 중간의 빈 자리를 채워나간다는 말. 자신과 자신의 책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준다면 고맙다는 말. 인생의 고통과 실패도 작가에게는 하나의 글의 도구이니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 인생을 즐기고 어떤 경험이든 받아들이지만, 죽음이 하나의 위로라는 말. 죽음 후엔 자신이 완전히 소멸하고 자신의 책도 완전히 잊혀지기를 바란다는 말.
그렇게 대단한 글을 남기고도 자신은 그저 주어진 일을 할 뿐이라며 한없이 겸손힌 그.
그라는 사람이 가진 생각들, 삶의 태도들, 글이 씌어진 과정들을 알게 해주는 제법 재미있는 책이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내가 그것들에 대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잘못된 인연, 잘못된 행동, 잘못된 환경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는 도구랍니다.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불행조차도 말이에요. 불행, 패배, 굴욕, 실패, 이런 게 다 우리의 도구인 것이죠. 행복할 때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겐 실수가 주어지고 악몽이 주어지죠. 거의 밤마다 말이에요. 우리의 과제는 그것들을 시로 녹여내는 겁니다. 만약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적이라고 느낄 것이며, 주무르고 빚어서 형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종의 점토라고 느낄 거에요.
...물론 내 나이가 여든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꿈 꾸는 게 과업인 내가 계속 살고 꿈꾸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겠어요? 나는 항상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들은 말이 되어야 하고, 나는 말과 씨름해서 최선의 것이든 최악의 것이든 그걸 형상화해야 하는 겁니다.
-영혼은 스스로 지옥이나 천국에 이르게 되죠.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혼은 그 스스로를 거치면서 지옥이나 천국이 되는 거에요.
-시를 쓰는 것이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작가의 의지를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일부러 어떤 주제를 내세우려 한 적이 없어요. 일부러 주제를 찾은 적도 없고요. 주제가 나를 찾도록 내버려둔 채 거리를 걷고, 내 집의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죠. 눈 먼 사람의 조그만 집 안에서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뭔가 일어나려 한다는 걸 느껴요. 그건 한 줄의 시구일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모양일 수도 있어요....... 나는 두 개의 끝부분을 봅니다. 그게 다에요. 나는 그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을 지어내야 합니다. 만들어내야 해요. 그게 나에게 남겨진 일이죠. 더 멋지고 어두운 이름을 사용해서 말하자면, 뮤즈나 성령이 나에게 주는 것은 이야기 또는 시의 끝과 처음이에요. 그럼 나는 그 사이를 채워야 해요. 길을 잘못 들어설 수도 있고,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할지도 몰라요. 다른 어떤 것을 지어내야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언제나 처음과 끝을 알고 있어요. 내 개인적인 경험은 이렇답니다.
-당신들이 내 책을 모른다면 감히 추천하고자 하는 책이 두 권 있어요. 한 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거에요. 한 권은 시집 '밤의 역사'라는 책이고, 한 권은 '모래의 책'이에요. 다 읽고 난 뒤에는 그걸 아주 쉽게 잊을 수 있을 거에요. 당신들이 그렇게 잊는다면 나로선 매우 감사한 일일 거에요. 나도 그걸 잊어버렸으니까 말이에요.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 돌아올 수 있어요. 어느 하루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죽음을, 또한 많은 탄생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러나 나는 죽어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 경험들이 시로, 단편소설로, 우화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는 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비록 나의 행위와 말 가운데 많은 것들이 기계적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그것들은 삶이라기보다 죽음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에요.
-모든 시는 대상을 낯설게 느끼는 데서 비롯되지요. 반면에 모든 미사여구는 대상을 무척 평범한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됩니다. 물론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사람의 몸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 눈으로 본다는 것, 귀로 듣느다는 것과 같은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곤 해요. 어쩌면 내가 쓴 모든 것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당혹감이라는 핵심 주제에 관한 은유이거나 변용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요.
-존재의 유한성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난 그러한 것들을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심정으로 생각해요. 나는 죽음을 탐낸답니다. 매일 아침 깨어나 '흠, 내가 여기 있군. 다시 보르헤스로 돌아가야겠네'라고 반복하는 걸 멈추고 싶어요....
그래서 잠에서 깨면 늘 실망스러운 기분이랍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요. 낡고 어리석은, 똑같은 게임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현재니까요. 현재가 과거에 의해 그리고 미래의 두려움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현재란 언제인 거죠? 현재는 과거나 미래만큼이나 추상적인 것이에요. 현재의 우리는 언제나 과거와 미래를 함께 가지고 있는 거에요. 우린 늘 미래에서 과거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어요.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에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하는지 그릇되게 행동하는지 알아요. 최후의 심판은 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에요. 우리가 그릇되거나 올바르게 행동하는 매순간마다 진행되고 있다고 말이에요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데 있다고, 꽤나 가망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계속해서 꿈을 꾸고, 글을 쓰고, 그 글들을 무모하게 출판하는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게 내 운명인걸요. 내 운명의 모든 것이, 모든 경험이 아름다움을 빚어낸 목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나는 실패했고, 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것이 내 삶을 정당화할 유일한 행위니까요. 끊임없이 경험하고 행복하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어리둥절하는 수밖에요.
-망각보다, 잊히는 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이게 바로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이에요.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시가 될 목적으로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삶의 매 순간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할 거에요. 당장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에요. 결국 기억이 모든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놓는답니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의무는 정서를, 추억을 심지어 슬픈 기억조차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거에요.
-별이 총총한 드넓은 하늘 아래
무덤 파서 나를 눕게 하라
기쁘게 살았고 기쁘게 죽으니
나, 기꺼운 마음으로 내 몸 눕혔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역사에 대해 제임스 조이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깨어나려고 무지 애쓰는 악몽."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렇지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0) | 2020.12.02 |
---|---|
파랑새의 밤 (0) | 2019.10.16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30주기 기념 시전집 (0) | 2019.05.22 |
간다, 봐라 법정 스님의 사유 노트와 미발표 원고 (0) | 2018.10.26 |
꿈 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 (0) | 2018.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