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Jean Michel Othoniel-my way

바다가는길 2021. 1. 11. 17:00

오토니엘의 전시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봤다.

오토니엘? 전에 전시 한 번 봤었는데? 나쁘지 않았는데..

블로그를 뒤져 다시 보려하니 아무리 찾아도 글이 없다.아마 그때 글을 올리지않았던 모양.

사진 폴더를 뒤지니 거기에 사진들이 그대로 있네.

이번 달 말까지 라는 전시,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있을까? 가게 될까?
우선 그때 못올린 지난 전시를 정리해보자.

 

벌써 10년 전의 전시, 사진을 보니 기억이 새롭다.

로댕갤러리였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2011.09.08-11.27. 삼성 plato.

 

 

 

이번 전시는 작가의 중간 회고전으로 1980년 대 초기작부터 최근 대규모 유리 설치작업까지 작가만의 폭넓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자전적 경험과 트라우마에 근거한 그의 작업은... 인간으로서 작가가 경험하고 인내해야했던 고통의 시간을 공감하게 한다. 재료의 아름다움과 혐오감 사이를 오가며 삶의 양가성을 천착해 온 그의 작품세계는 주류 미술계의 개념적, 형식적 계보와는 거리를 둔 '개인 신화'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 유기적 세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장르의 한계에 도전해 온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강인함과 연약함을 겸비한 유리의 무한한 색채와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로부터 유리의 조각적 특성을 넘어 새로운 기념비성을 실현한다. 신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장신구를 건축적 규모로 확장하는 그의 조형방식은 초현실주의를 계승한 것이면서 동시에 역사와 대중문화에 대한 참조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미술사가 무관심했던 아름다움과 환상의 세계를 복원함으로써 시각영역의 풍요로움을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라캉의 매듭.2009

-라캉의 매듭-은 이전의 '목걸이'작업과는 다른 오토니엘의 새로운 예술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진 정형화된 형태와 초현실주의적 성향을 떠나 '매듭'연작은 완벽히 추상적인 형태를 통해 드러나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그 사이의 공간에 초점을 두고 있다. .. 자크 라캉은 세 개의 고리로 이루어져 하나가 끊어지면 전체가 해체되어 버리는 이 매듭의 구조를 통해 인간의 욕망 깊이 잠재하고 있는 상상계,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의 상호의존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물상의 스케일을 상식의 범위 너머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면 그 물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진다.

외부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거대하게 확대된 색색의 유리구슬들은 구슬 하나 하나가 고유의 세계같고, 꿰어진 모습은 그 하나 하나의 세계가 무한히 연결된 커다란 우주에 대한 비유같았다.

스스로 서있는 커다란 매듭. 2011

 

 

 

 

 

black heart red tears. 2007

 

검은 마음 붉은 눈물. 설명에도 있듯 그의 작품들은 그가 살아온 생의 슬픔과 고통들에 대한 표현인 것 같다.

어린 시절, 그가 사랑했던 한 소년은 사제에의 꿈을 가졌으나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그 상실, 정체성으로 인한 고통들이 그의 트라우마이자 창작의 원천이 된 듯하다.

 

검은 묵주. 슬픔과 고통과 절망, 애도.

뒤의 흰 사제복은 사랑했던 소년에 대한 기억인 듯.

 

 

 

 

 

 

 

 

행복의 일기.

<행복의 일기>는 원래 드림캐쳐로 의도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마치 거대한 주판같은 형태의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한 일기장이다. 사용자는 매일 그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따라 흑백으로 나누어진 쪽으로 구슬을 옯긴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임의적인 형태는 사용자의 일상 속 내밀한 감정들을 기록한다. 세상을 다시 마법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작가는 행복과 불행 사이의 관습적인 대립을 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루 하루의 행, 불행이 왼쪽으로 오른 쪽으로 자리잡고 나면, 나는 행복한가, 나는 불행한가가 한 눈에 드러나겠다.

재미있는 발상.

 

 

 

 

 

tears. 2002

<눈물들>은 작은 유리 모형을 이용해 부력을 실험하는 데카르트 잠수부 인형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물이 가득 채워진 60개의 유리병들로 이루어져 있다.....각각의 병 안에는 갈고리, 하트, 별, 목걸이 등 2000여개의 다양한 모형들이 떠있는데, 작가가 오랜 기간 수집해온 봉헌물의 일부와 이전 작품들의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눈물 위에 비치는 눈부신 불빛처럼 물 위에 떠도는 화려한 색채의 오브제들을 통해 작가는 관객들에게 대규모 작품들과는 또 다른 환상의 소우주를 선사한다.

 

유리병 속의 다양한 오브제들은 그에겐 아마 하나 하나 다 의미있는 어떤 상징물들이었을 거다.

무수히 흘렸을 방울 방울 떨어져 내린 눈물들 속에 깃들었던 마음들.

하지만 나는 그 투명한 유리병들과, 그 속의 색색의 가지각색의 오브제들이 마냥 신기하고 예뻤던 기억.

 

 

 

 

 

 

 

 

나의 침대. 2003

<나의 침대>는 2003년 카르티에 재단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 <크리스탈 궁전>을 위해 제작되었다... <나의 침대>는 개인만의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으로서, 침대를 둘러싼 현란한 색채의 유리구슬과 매달리고 움켜쥐도록 만들어진 은 레이스의 고리들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건 제목이 뭐였나?

뻥 뚫려버린, 구멍나버린 마음을 어떻게든 스스로 위로하고 수습해보려는, 화려한 비즈들이 그렇게 보였던 기억.

 

 

 

my way

my way. 전시회 제목을 모티브로 했을텐데, 그다지 크지않은 한 사방 1m쯤의 벽면 설치물.

작은 색색의 유리구슬들. 빛을 투영하는 유리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현란함에 혹해 그 앞에서 한참을 다가갔다 멀어졌다하며 들여다봤던 기억.

유리라는 재료만의 매력이 있다. 차갑고 단단하고 투명하고 빛을 담는 영롱함이 있으면서 한편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연약함과 날카로움.

 

 

 

 

 

 

소원을 비는 벽. 2011

작품은 인이 칠해진 대규모 벽면으로 된 일시적 설치물로, 함께 비치된 성냥개비를 관객들이 벽 표면에 긁어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며 참여하게 된다. 전시기간 동안 관객들의 참여로 표면에 남겨지는 '상처'의 흔적들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드로잉으로 재탄생되며, 이러한 퍼포먼스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친밀한 교감을 유도하며 하나의 '치유'의 과정으로 선사된다.

 

나도 성냥을 그어 소원을 빌었었던가?

무심히, 또는 간절히 그어졌을 하나씩의 선들이 모여 거대한 추상화를 만들었었다.

그 밑에 쌓인, 한 번 쓰이고 버려진 성냥개비들의 무덤?도 왠지 유감했었고.

 

 

 

그 때 오토니엘의 전시 나쁘지 않았었다.

이번의 전시소개를 보니 여전히 유리를 소재로 하지만 형태가 많이 달라졌던데, 어떤 작품들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