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부흐빈더 & 베토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021-10-20. 19:30
부흐빈더의 콘서트가 이틀에 걸쳐 있었다.
첫날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둘째날은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레퍼토리가 짜였다.
피아노 소나타는 몇 번들인가 살펴보니 몇 개외엔 덜 좋아하는 곡들인데다 피아노 소나타들은 그래도 꽤 들어봤으니.. 게다가 표가 이미 매진.
예매대기를 걸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보단 둘째날의 디아벨리변주곡들이 훨씬 궁금한데다 표까지 널널하니 얼른 예매.
아무래도 디아벨리 변주곡보다는 피아노 소나타가 훨씬 인지도도 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레퍼토리인가보다.
디아벨리 변주곡은 디아벨리라는 베토벤 당대의 출판업자가 유명한 작곡가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월츠를 모티브로 변주곡들을 작곡해줄 것을 의뢰해 만들어진 모음집이다.
디아벨리가 아마추어 음악가로써 자신의 역량을 점검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꽤나 사업적인 마인드로 당대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살롱에서 연주되게 함으로써 흥행을 노린 거라고.
베토벤은 그 모티브가 마음에 안들어 제의를 거절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후에 무려 33개의 변주곡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당시엔 이 변주곡이 그다지 많이 연주되지 않았단다.
디아벨리가 의도했던 건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쉽고 낭만적인 곡들로 짜여져 살롱이나 음악회장에서 많이 연주되는 거였겠지만 베토벤의 곡들이 너무 하이테크닉이어서 연주가 쉽지않았기 때문이라나.
33개의 곡들이 어찌나 재기발랄한지. 베토벤의 곡들은 지금 들어도 고답적이지 않고 너무 현대적이다.
둘째날의 레퍼토리는 정확히 말해 부흐빈더의 '디아벨리 프로젝트'.
표를 예매하고 부흐빈더의 디아벨리를 들어보려 유튜브에 들어가니 작년에 이번 콘서트와 똑같은 레퍼토리로 '디아벨리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더라.
당대의 베토벤외 여러 작곡가들의 변주곡과 현대에 새로 의뢰해 만들어진 변주곡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레퍼토리.
세어보니 총 44곡이네.
베토벤의 디아벨리는 그의 전성기인 후기에 작곡된 것들이라 그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풍성하기 이를데 없는 곡들이고 나머지 작곡가들의 곡도 하나 하나 다 개성이 다른 곡들이다.
익히 이름이 익은 체르니나 크로이처를 비롯해 리스트, 슈베르트도 있는데 특히 리스트는 무려 11살이었다니.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리스트스러워.. 슈베르트 역시 슈베르트스럽고.
또 현대작곡가들의 곡들도 하나같이 색깔이 다 다른 너무 재미있는 곡들이었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다른 음악들이? 심지어 어디 어느 부분이 디아벨리의 모티브인 거지 싶게 개성있는 곡들.
유튜브에서 들은 부흐빈더의 연주는 한 마디로 명쾌함 그 자체였다.
디아벨리변주곡은 딱히 정해진 연주가 없어 연주자에 따라 연주시간이 거의 10분이나 차이가 난다고했다.
예로 들은 소콜로프와 폴리니의 연주를 들어보니 폴리니는 경쾌하게 총총총.. 소콜로프는 한없이 주저주저하며 한 걸음 걸음을 옮기고..
그런데 이런 저런 연주자들의 디아벨리 중 부흐빈더가 정말 딱이더라. 너무나 선명하고 명쾌한 연주.
콘서트는 1부에 디아벨리 오리지널 모티브와 현대 작곡가 11명에게 의뢰한 곡들, 그리고 디아벨리 당대의 베토벤 외 작곡가들의 변주곡 9곡. 그리고 2부에 베토벤의 변주 33곡으로 짜여졌다.
1부의 연주는 마치 cd를 듣는 듯.
표현은 표현대로 깊은데 기교는 속주에서도 한 음 한 음이 어찌나 정확하던지 거의 묘기대행진이다 싶을 지경. 쾌청한 가을 하늘처럼 피아노소리 하나하나가 또록또록했다.
오히려 2부 베토벤의 디아벨리가 체력이 달리는 듯 내겐 좀 dull한 느낌이었었다.
유튜브에서 들을 때 변주곡 31번인가 32번인가는 왠지 소나타같네, 소나타랑 짝을 맞춘 건가 싶었는데 설명을 보니 피아노 소나타의 모티브가 변주곡에 들어가 있다던가.
연주회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변주곡들로 소나타에서처럼 한없이 슬퍼지던 마음..
이렇게 진하게 짜여진 레퍼토리가 너무 좋다.
벌써 연주를 들은지 며칠이 지나 현장에서의 생생하던 한 곡 한 곡의 느낌은 잊혀져간다. 하지만 좋은 연주는 언제나 음악과 나와의 매개자가 되어 그 곡과의 인연을 새로 만들어준다.
천천히 디아벨리 변주곡 하나 하나를 다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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