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정명훈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김선욱

바다가는길 2019. 9. 30. 18:30

 

 

 

2019.09.27. 금. 오후8시. 세종대극장

 

 

프로그램

 

1.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협연 김선욱.

   1.Allegro 2.Adagio un poco mosso 3.Rondo. Allegro

 

2. 브람스 교향곡 2번

   1. Allegro Non Troppo  2. Adagio Non Troppo  3.Allegretto Grazioso  4,Allegro Con Spirito

 

 

김선욱의 연주, 오랜만.
내가 공연을 선택하는 조건은 레퍼토리와 연주자. 아, 그리고 공연장.
(좋아하는 연주자에 좋아하는 음악들이었는데 공연장 환경이 나빠 실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번엔 세종회관의 김선욱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아, 좋네..
미리 표를 예매해놓고 오래 기다렸던 연주회였다.

 

일찍 집을 나섰건만 길이 왜 이렇게 막혀?,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이러다가 늦을 것 같은데.. 싶다가, 에효, 1부 공연 포기해야하나? 마음을 비워야하나?..
광화문 정류장에 내리니 8시 5분전, 한 5분만 늦게 시작해라, 제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며 경보 수준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데 저 앞의 누군가가 세종회관을 향해 뛰어간다.
연주회 가는구나.. 아니, 나도 뛸까? 뛰어도 시간 안에 못 갈 것 같은데.. 아냐, 나도 뛰어보자, 가는 데까지 가보자, 뛰기 시작한다.
세종회관문을 들어서니 8시, 로비는 이미 텅 비어있고.. 매표소가 어디지? 두리번 거리는 나를 하우스 어텐던트가 잡아끌어 매표소로 부랴부랴 안내한다. 그와 동시에 매표소의 대, 여섯명의 매표원들이 일제히 '이름이 뭐에요?' 소리를 지른다. 마음이 급해 예매표 확인을 위한 전화번호 뒷자리가 생각이 안나 엉뜽한 번호를 대니 '몇 번맞으시죠?' 스스로 말하며 표를 내준다. '못들어갈지도 몰라요. 빨리 오른 편 엘리베이터를 타세요!'
또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이번엔 거기 어텐던트가 내 표를 뺏어들고 '어서요, 이리로요, 문 닫혀요!' 하며 나를 극장 안으로 안내했다.
간신히 세종회관 극장의 문을 들어서니 연주자가 무대로 걸어나오고 있었고, 내가 빈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그도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포기할 뻔했던 김선욱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가쁜 숨을 채 가라앉히지도 못한 채 듣는 '황제'
1악장은 타이트한 템포로 급히 급히 서둘러 나아간다.  명암이 분명한 악장
하지만 1악장을 그렇게 타이트하게 표현하는 것은 2악장을 위한 포석.
1악장의 강렬함은 2악장의 한없이 감성적인 선율을, 마음 껏 감정을 기울이는 표현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의 색.
나는 그렇게 듣는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조용히 다독거리는 듯한 교향악단의 도입부에 얹혀지는 마음 아린 피아노 선율.

김선욱의 느린 악장들이 너무 좋다.
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깨끗하고 영롱한지.... 저 밑까지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맑디 맑은 물을 보는 것 같다.

 

그는 요새 뭐 좋은 일이 있나? 음악이 왜 그렇게 기쁘고 행복하게 들리지?
연주는 마치 아끼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처럼 즐겁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앵콜곡, 비창소나타 2악장.
이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연주가 끝나고 옆자리의 누가 내게 묻는다. 비창이죠?
내가 답한다, 아니, 월광 아닌가요?
이런! 무식이 통통.
그런데 난 항상 헷갈린다. 비창소나타  2악장에서 난 달빛을 느끼거든..
곡명 좀 모르면 어때? 좀 헷갈리면 어때? 왼 손이 그려내는 선율들, 오른 손이 그려내는 선율들, 서로 따르고  얹혀지고 나뉘고 모아지며 쌓는 그 음들의 향연이  내게 너무 아름다운 걸.

 

극장에 못들어가서 2부 공연만 봐야했으면 어쩔뻔했어?
처음 듣는 것 같은 브람스교향곡 2번은 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 마음 가는 구석이 별로 없더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도 별 느낌이 없었다.
김선욱과의 협연에서도 처음에 어쩐지 피아노와 아귀가 잘 안맞는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고, 소리가 거칠다 싶은 부분도 있었고.
이번 공연은 1부로 족했다.

 

8시가 다 돼 문을 들어서서 매표소를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나 몰라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면, 표를 찾은 후 엘리베이터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가야했다면, 입장 시간 지났어요, 문 닫고 입장을 안시켜줬다면...
1부 연주를 놓치고 헛걸음이 됐을 수도 있었는데  어린 하우스 어텐던트들, 아마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일텐데 매표소 직원들도 그렇고 그렇게 성실히 임무를 다하며 자기 일처럼 함께 뛰어준 그들, 모두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