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stalghia , 1983 제작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제작 노트
[노스텔지아]의 기억과 꿈, 환상은 현실과 경계가 모호하다. 작품이 객관적인 외부현실의 논리와 다른 인물의 주관적인 논리, 주관적인 리얼리티를 따르고 그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스타일은 전통적이고 상업적인 영화를 통해 관객이 습득하고 있는 회상과 꿈, 환상의 익숙한 관습과 다르다. 그는 관객에게 전혀 새로운 영화적 각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노스텔지아]는 무엇을 상징한다거나, 논리적인 분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물이 지닌 내면의 풍경은 그저 그 정서의 흐름을 따라 바라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표현대로 기차 여행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듯 이 영화를 바라보면 된다.
노스텔지아: 우리 모두가 돌아가려는 그 곳
“이처럼 자기 자신의 과거에 좌우되며 숙명적으로 연관되는 감정, 이렇게 점점 견뎌내기 어려워지는 병의 이름이 바로 향수 아닌가?” - 타르코프스키
제목 [노스텔지아]는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하는 단어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인에게 그것은 단순한 향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고향과 떨어져 있으며 느끼는 고통스런 심정과 함께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와 자신의 뿌리와 땅으로부터 유배된 자의 마음을 의미한다.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텔지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믿음과 희망의 상실로 인한 영적인 고통과 아픔이며 이것을 이기지 못한 자에게는 죽음이 닥쳐온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노스텔지아는 이 곳이 시간 아닌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상태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병이다. 고르차코프가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곳, 시간은 러시아의 시골집과 자연,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자연환경을 파괴해가며 모든 정신적인 가치들을 상실해 가는 현대의 삶의 방식에서 그가 돌아가길 바라는 고향은 단순한 지리의 이동으로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향이며 지나간 시간과 기억인 동시에 미래의 비전으로 존재하는 이상향을 의미한다.
두 세계의 화해 : 타르코프스키가 이끄는 상상적 세계
[노스텔지아]는 새로운 우주적 화해를 도모하는 노력의 기록이다.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텔지아]가 서로에 대해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없음을 보여주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영화라고 설명한다. “아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노스텔지아]는 문화간의 교류나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러시아인은 단테를 안다고 말하고 이탈리아인은 푸시킨을 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르차코프에게 번역이란 쓸데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그는 시집을 태우게 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유제니아의 이와 같은 질문에 고르차코프는 경계를 무너뜨리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는 그 부담을 광인인 도메니꼬에 지우려한다. 도메니코에게 세계의 경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메니꼬의 집 벽에 그려진 방정식 1+1=1 이 바로 그 열쇠이다. 하나의 물방울에 다른 하나의 물방울을 더하면 좀 더 큰 물방울 하나가 된다는 도메니꼬의 말. 이는 겸손하게 자신의 믿음을 태우는 것이며 결국 두 개의 촛불이 타오르며 경계는 무너진다. 고르차코프의 작은 촛불과 도메니꼬의 인간 촛불. 이때 비로소 두 세계, 즉 러시아의 전원(과거)과 이탈리아의 황폐화된 문화 유산(현재)의 이미지는 환상적인 결합을 이루게 된다.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마음의 풍경 : 유배와 향수의 정서
“[노스텔지아]의 제작은 끝났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다룬 것과 동일한 향수를, 그것도 영원히 갖게 될 것을 나는 촬영 중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中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텔지아]에서,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러시아인이 느끼는 그들 특유의 민족적인 정서를 이야기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고향에 대한 향수로 다시 노예의 삶을 살기를 자청한 소스노프스키의 이야기,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밟으면서 그와 똑같은 향수에 시달리는 고르차코프. 이제 타르코프스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만든 허구의 인물 고르차코프의 뒤를 밟게 된다.
20세기 초 소련의 예술가들은 대부분 폐쇄된 제국 러시아로부터 벗어나 개방된 유럽에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하는 상상을 했다. 그들에겐 유럽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타르코프스키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신봉하는 소련 당국의 정책과 수차례에 걸쳐 충돌하고 억압을 받았던 그에게 창작의 자유는 간절한 것이었다. 결국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텔지아]의 촬영이후 예술 활동의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망명한다. 그러나 자유의 대가로 그가 지불한 것은 고향에 대한 고통스러운 그리움이었다. 고향의 가족과 친구, 대지와 끊어지지 않은 고리는 숙명적인 향수를 불러 일으켰으며 따라서 유럽은 그에게 유배지이기도 했다. 결국 타르코프스키는 [희생]을 제작한 후 유배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About Movie
물과 불의 모티프
도메니꼬가 사는 집의 낡고 구멍이 뚫린 천장에서 많은 물줄기가 바닥의 녹색 병 무더기로 떨어지는 장면은 [노스텔지아]에서 기억에 남을 여러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노스텔지아]에서 물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티프이다. 고르차코프의 고향은 비가 자주 구성지게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암시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변화하고 유동하는 느낌, 끊임없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기억과 윤회를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 물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 불은 희생과 구원의 의식을 의미한다. 밝은 빛. 변화에 대한 깨우침. 도메니꼬가 세상의 변화와 회귀를 위해 선택한 매체는 불이다. 자신을 바치는 희생 제의의 불과 고르차코프가 옮기는 작은 불은 가벼운 바람에도 위태롭게 흔들거리지만 정결한 속제의 모티프로 기능하고 있다. 이 정화의 불이라는 모티프는 다음 작품인 [희생]에서 집을 태우는 마지막 장면을 암시하고 있다.
흑백 : 기억, 환상의 풍경
[노스텔지아]에서 나타나는 흑백의 이미지는 현실과 구별되는 시간과 다른 차원의 의식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영화적 약호로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다. 우선 그것은 고르차코프가 그리워하는 향수의 대상인 러시아의 풍경, 과거의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의 첫 장면 안개 낀 들과 호수, 전신주와 백마의 세피아 톤 이미지, 아내 마리아와 유제니아가 함께 있는 도메니꼬의 집에서 본 마음속의 풍경, 도메니꼬와 그의 가족이 감금에서 풀려나오는 기억, 마지막 대성당의 장면 등은 모두 색이 바랜 흑백을 사용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 내면의 리얼리티
영화의 시간이 현실의 시간과 일치하지 않듯 공간 역시 영화의 주제와 연관된 장소만 선택된다. 인적 드문 호텔의 긴 복도, 산타 카타리나의 온천, 로마의 카피톨리니 언덕, 고르차코프의 방과 도메니꼬의 집은 인물의 내면세계와 일치하는 공간이며 그들의 의식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카메라 움직임 :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노스텔지아]의 카메라 움직임은 현실세계에서 기억, 꿈, 환상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기능을 한다. 누구의 시점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세계, 특히 고르차코프의 내면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현실공간인 이탈리아의 토스카니와 고르차코프의 러시아 시골 농가를 연결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의 속도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감정의 깊이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관객을 인물의 내면에 초대하여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노스텔지아]에서 상황의 전개는 몽타주가 아닌 카메라의 은근한 움직임과 한 화면 내에서 변화하는 조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음악
[노스텔지아]에는 베르디, 바그너, 베토벤, 드뷔시의 음악이 적절하게 등장하며, 도메니꼬와 고르차코프의 대조적인 성격과 분위기도 음악의 모티프로 표현된다. 고르차코프가 처음 도메니꼬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나오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도메니꼬가 카피톨 언덕에서 자신을 바칠 때 사용하는 음악이다. 반면 고르차코프의 음악은 러시아 민속음악과 베르디의 레퀴엠에서 [무언가]를 사용하여 고향에 대한 정서와 다가올 미래의 비장미를 더하고 있다.
Production Note
[노스텔지아]는 유럽 텔레비전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러시아 영화이다. 1962년 [이반의 어린 시절]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를 방문한 타르코프스키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토니노 구에라를 만나게 된다. 구에라와 타르코프스키는 이때부터 동반자의 관계를 맺어 나가고 구에라는 타르코프스키에게 이탈리아를 다시 방문할 것을 권하게 된다. 타르코프스키가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은 구에라와의 유대와 [정사]의 유명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그는 197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 참석하여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보여줄 것을 소련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 바 있다.)의 권유로 비롯되었다. 타르코프스키는 그 후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고 1976년 토니오 구에라와 함께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이 나라에 대한 인상을 기록할 다큐멘타리 [여행의 계절 Tempo di viaggio]의 구성안을 마친다. 3년 후 이탈리아를 다시 방문한 타르코프스키는 구에라와 함께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며 자신과 가족을 40년간 감금한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고국 소련은 타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좀더 발전시키는데 동의하고 1981년 3월 소련 쪽의 소빈 필름과 이탈리아 방송국인 RAI가 합작함으로서 영화사 백년의 기념비적인 걸작 [노스텔지아]의 탄생이 이루어지게 된다.
본래 타르코프스키는 많은 부분을 러시아에서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소빈 필름과의 계약이 깨어지면서 모스크바 촬영분을 반으로 줄이게 되는데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좀더 만족스런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며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행운이 우리에게 손짓하였다. 이탈리아 토스카니에서 우리가 발견한 농가는 영화적으로 모스크바의 장소보다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누가 요즘에 '구원'이라는 단어를 말하나. 머리 속에 잠시라도 떠올리려나.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버는 것에 관한 일, 혹은 어떻게하면 지위를 한 단계라도 높일지, 조금 더 큰 차를 살지, 좋은 집을 장만할지, 들을 고민하고 이야기할 망정 그 누가 '영혼'이라든가 '구원'이라든가에 흘깃 스치는 눈길이라도 한 번 주겠는가.
타르코프스키, '희생'에서와 같이 이 영화 '향수'에서도 구원을 이야기한다.
인류의 구원, 그 영혼의 구원.
늘 그렇듯 값진 것을 얻기위해선 간절한 바램과 함께 희생을 치뤄야하고.
'향수'란 꼭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잃어진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 '믿음과 희망의 상실로 인한 영적인 고통과 아픔, 이곳, 이 시간이 아닌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상태에 대한 갈망'이라는 설명.
본원적인 것의 상실을 자각하는 건 늘 시인, 예술가, 아니면 광인, 세속인들로부터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는 선각자.
타르코프스키, 역시!
그토록 진지하고 아름답다.
구도, 조명, 색, 한 컷 한 컷이 다 그 어느 면에서도 완벽한 영상.
조화를 이룬 것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영상, 너무 아름다운 영상들.
빈 대야, 유리병 속으로 음악되어 떨어지는 비톨, 옆구리로 끼어드는 햇빛에 폭죽처럼 환하게 터지는 빗방울들, 빗소리..
영상으로도 음향으로도 진행속도로도 여백이 많은, 여유를 주는 영화.
조용히 마음 속 한 가운데 좌정하고 그가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뛰어난 표현력, 표현의 창의성, 장인성.
눈 가만히 감으면 밑바닥까지 훤히 비추이는 맑은 물같은 영상들이 떠오른다.
작은 이슬방울 하나에 온전히 들어있는 온 세상의 모습처럼 내 뇌세포 하나하나마다에 온전히 맺혀있을 그 영상들.
심상을 비출 수 있는 현미경이 있다면 볼 수 있을 그 무한복제된 무수한 영상들, 나의 말로 번역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