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병산서원에 다녀왔다.
병산서원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있었다. 유홍준씨의 글을 통해서도 그렇고.
근데 차도 없는데 거기 어떻게 찾아가야해? 가보고는 싶었지만 늘 미루었었는데, 드디어 여행사프로그램에 병산서원이 떴다. 게다가 도산서원까지 코스에 포함!
안동여행상품은 가격도 저렴한데다 안동시장에서 쓸 수 있는 만원 상품권을 돌려주니 가성비가 너무 좋다.
그리고 안동에서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안동의 역사와 현 상황들, 찾아가는 곳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는데 정말 프로다워 많은 도움이 됐다. 다만 내 마음대로 보고싶어 따로 도는 바람에 그 설명들을 많이 놓쳐 아쉽.
병산서원 입구의 마을에서 서원까지 들어가는 길은 1차선 비포장도로이다. 이 도로에 들어서기 전 차가 덜컹거릴거라는 주의를 주면서 불만 섞인 어조로 해설사가 하는 말이, 통행하는 차량이 늘어 심지어 들고나는 버스들이 마주치면 한 쪽이 멈춰 비켜줘야 하는 지경이라 도로를 확장해달라고 끊임없이 관청에 요구함에도 시행이 안되는 게, 유홍준씨가 병산서원은 마을 입구에서 차에서 내려 서원까지 흙길을 걸어가야 그 제 맛을 안다고 했기 때문이라나? 분명 그 말이 일리가 있어보였지만 하루에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현재의 상황엔 맞지않는 얘기일 수 있겠다.
천천히 햇살 받으며 강을 끼고 흙길을 걷는 그런 여유, 이젠 바랄 수 없는 시절이다.
현지인의 불만에도 관광객인 나는 덜컹거리는 길 조차 재미있었고(사실 그다지 불편할 정도로 덜컹거리는 것도 아니었고..), 서원 입구에 내리니 이른 시간인가? 사람도 별로 없이 한적하고 조용한 게 얼마나 좋던지 바로 마음이 편안히 풀어진다.
차에서내려 서원까지 잠시 걷는 동안의 강변. 그냥 아무 꾸밈도 없는 강가의 모습. 오히려 꾸밈이 없어 너무 좋았다.
여기 너무 좋다! 서원 얼른 보고 다시 오자!
자그마한 대추나무에 대추가 조롱조롱 한가득. 정갈한 마당. 아담하고 예뻐보이던 강변 앞 민박집. 담에 언제 여기서 묵고 새벽강 보면 좋겠다..
어느 식당의 안마당. 빗겨드는 햇빛에 찬란한 풍경이 너무 예뻐 밥 먹을 것도 아니면서 무작정 들어가 한 컷.
아, 여기가 바로 병산서원, 이렇게 생겼네..
그 유명한 만대루. 아쉽게도 문화재 보호로 만대루엔 올라가 볼 수가 없다. 누마루에 올라 병산과 낙동강을 마주해봐야 하는데..
서원 자체는 그리 규모가 크지않은데 비해 만대루는 호쾌하게 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 서원으로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모였을지가 상상됐다.
학생들이 머물던 서재. 병산서원은 유성룡을 모시는 사원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원.
아담한 한옥이 너무 예뻐 한 컷. 사진 찍는 내 등 뒤로 동재가 있다. 오른 쪽 위로 계단을 오르면 주서당인 입교당.그리고 그 뒤로 사당. 강가에 빨리 가고 싶어 그냥 휘리릭 한 바퀴 돌았다.
서원 앞을 지키던 배롱나무. 여행기 쓰려 다시 검색해 본 병산서원에 관한 글을 보니 배롱나무는 유성룡이 특히 좋아했던 나무이고, 나무껍질이 다 벗겨진 것같은 둥치가 선비의 숨김없는 강직함을 상징했다고.
서원 앞에 검은 색의 모던한 집이 하나 있는데 그 집 앞 솟대.
나중에, 다음에.라는 말에 기대는 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 나중, 다음은 수시로 우리를 배신한다. 누릴 수 있는 건 현재, 지금, 여기뿐.
고요한 강을 누리고 싶어 기대하던 서원도 부랴부랴 대충 보고 강가로 나섰지만, 그 강은 이미 내가 도착했던 때의 그 강이 아니다.
그새 관광객들 몰려들어 왁자지껄에 이 소음 어디로 가서 피하지 싶은데 설상가상 잔디를 손보느라 예초기 소리가 진동한다. 아까 그 시간을 놓친 게 얼마나 후회되던지.
이런 저런 소음을 피해 모래 강변을 한참 지나 강가로 나가보았다. 낙강과 동강이 모였다는 낙동강 강물은 탁했지만 햇살이 비쳐드는 병산의 숲과 긴 강변은 마냥 평화로웠다.
병산서원을 잘 보여주던 글 병산서원 - Daum 백과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여행상품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장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스케줄이 짜여진다.
그 유명한 안동시장의 찜닭 골목.
대구가 특별시가 되면서 도청 유치를 예천과 안동이 겨루게 됐는데 안동이 도청을 가져오는 대신 예천은 주거지역으로 개발됐다고. 그 결과 예천은 활성화됐지만 안동지역은 인구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경기가 죽어간다고 걱정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는데 그래도 여기 골목이 사람으로 가득해 다행이라는 생각.
난 찜닭대신 맘모스제과로. 유명이 허명인 경우도 많은데 빵들이 맛있었다. 긴 줄을 서야하는 걸 각오해야한다.
예끼 수상마을.
위쪽 벽화마을 어느 집 담벼락에 피어있던 아름다운 보랏빛 꽃.
안동호를 질러 긴 데크길이 조성돼 한들한들 걷기 좋다. 바람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언덕 위로 옛 관아가 재현돼있다. 거기 2층으로 된 누각에 올라서면 안동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도 바람이 어찌나 좋던지 그 바람에 온갖 먼지를 털어낸다.
도산서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마 수십년전일텐데 예전에 내가 왔을 땐 안동호가 생기기도 전. 그땐 강 건너까지 섭다리가 있었고 다리 기둥에 걸려 살캉거리던 맑고 투명한 살얼음 소리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데 지금 안동호엔 녹조가 기승이라 안타까웠다.
도산서원도 사람이 너무 많아 예전 퇴계의 자취를 더듬으며 한적하게 둘러보던 정취가 사라져 아쉬웠다. 그래도 이리저리 중첩되며 걸음마다 다른 풍경을 만드는 옛집들은 여전히 아름다워.
광명실. 서고.
퇴계가 직접 설계했다는 농운정사. 학생들의 기숙사. 여러 채의 건물들이 있지만 역시 옛집이 제일 아름다워.
서원 앞 풍경들.
야간개장을 한다더니 아마도 밤길을 밝힐 초롱들. 어여뻤다.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마주친 노을. 오늘 제법 알찬 여행이었어.
202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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