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이며 샘물인 정현종 문학과지성사 |
'자연은 왜 위대한가/왜냐하면/그건 우리를 죽여주니까/마음을 일으키고/몸을 되살리며/하여간 우리를/죽여주니까'
-자연에 대하여-
못 알아들을 말, 하나도 없다.
그가 보았던 것 나도 보았고, 내 마음 속에 담겼던 것들이 그에게도 갔었다.
갈증이어도 목마르지 않고, 샘물이어도 넘치지 않았다.
날개
향나무 꼭대기 가는 가지 끝에 앉아있는 작은 새가 바람에 막 흔들리는 가지와 함께 막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것도 두렵지 않고 떨어지는 것도 무섭지 않다.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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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오늘 밤은 없다
달력에 없다!
달력에 없는 오늘 밤!(흥분하지 말아야지)
나는 날을 찾았다(달력이 생긴 이래 잃어버린 날들)
춤추는 무한은 취해 있느니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일들은 없다
나는 남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여자와 잘 수 있으며
내 몫을 어느덧 챙길 수 없고
열린 척도가 과일 향기처럼 퍼진다
몸은 만물에 돌아가 가이없고
마음은 대공한 크나큰 숨결
시간이여
달력에 없는
저 개화의 한 없는 피어남에서
오늘 밤을 구해내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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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람결
이 바람 속에는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모처럼 맑은 이
바람 속에는---
어디서 눈이 트고 있다
이 바람결,
살어리 살어리
이 바람결,
포르르 포르르
이 바람결.
허공의 살이네
이 바람결.
멀리 멀리 퍼지는 이 몸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물들어
자세히 봄비는 이 몸.
오 붐비는 숨결
이 바람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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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여 꽃이여
새가 울 때는
침묵
꽃이 피어
무언
새여
너는 사람의 말을 넘어
거기까지 갔고
꽃이여
너는 사람의 움직임을 넘어
거기까지 갔으니
그럴 때 나는
항상 조용하다
너희에 대한 찬탄을
너희의 깊은 둘레를
나는 조용하고 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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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움직인다
몸을 여기서 저기로 움직이는 것
몸이 여기서 저기로 가는 건
거룩하다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가까운 데 또는 멀리
움직이는 건
거룩하다
삶과 죽음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욕망과 그 그림자--슬픔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와 한 없이 가까운 내 마음
나에게서 한 없이 먼 내 마음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바깥은 가이 없고
안도 가이 없다
안팎이 같이 움직이며
넓어지고 깊어진다
몸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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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가에 멈춰 서서
내 일터 손바닥만한 숲
포장한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멈춰섰습니다
(그러고 싶어 그랬겠지요)
내가 움직일 때는 나무들도 움직였군요.
멈춰 서자 나무들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적 일 순 ---
아주 잘 들렸습니다 그 고요,
부동이 만들어 내는 그
고요의 깊이에 빨려들었습니다
없는 게 없었습니다
광막하고 환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의 미덕이
쟁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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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공간의 숨결이여
내가 드나드는 공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집과 일터
이 집과 저 집
이 방과 저 방,
더 큰 공간에 품겨 있는
품에 앉겨 있는 알처럼
꿈꾸며 반짝이는 그 공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꿈꾸므로 반짝이고
품겨 있으므로 꿈꾸는
그 공간들은 그리하여
항상 태어 날 준비가 돼있다.
항상 새로 태어나고 있다.
어리고 연하고 해맑은
그 공간들의 태 내에 나는 있고
나와 공간들은
서로가 서로를 낳는다
서로 품어 더욱 반짝여
서로가 서로를 낳는 안팎은
가없이 정답다
그 공간들을 드나드는 때를 또한
나는 사랑한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그 모든 때는 태초와 같다.
햇살 속의 먼지와도 같이
반짝이는 그때의
숨결을
나는 온 몸으로 숨 쉬며
드나든다, 오호라
시간 속에 비장되어 있는 태초를
나는 숨 쉬며
드나든다
모든 때의 알 또한
꿈꾸며 반짝이며
깃을 내밀기 시작한다
시간이란 그리하여
싹이라는 말과 같다
시간의 태가 배고 있는 모든
내일의 꽃의 향기를
그 때들은 꽃 피운다
내가 드나드는 공간들이여
그렇게 움직이는 때 들이여
서로 품에 안겨
서로 배고 낳느니
꿈꾸며 반짝이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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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걸어가듯이
시간은 흘러,
흐르는 시간
쓸쓸하여,
마음 안팎을 물들여,
가을 바람이 나무를 흔들듯이
내가 말 없이 걸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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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마음은 춤춘다, 아름다움이여!'
'저 꽃들,/그냥 피어나고/또 피어나고/ 이 세상의 온 갖 색깔을 춤추는 /계절과 햇빛의 고향'
'바라보면 항상 이쁜/이쁘고 나서 또 이쁜'
'맑은 공기 향기로운 흙/눈 가는데 산과 하늘/사과꽃 복사꽃,/아무 것도 서두를 게 없고/서두르는 것도 없으며/서둘러 말할 것도 없다/마음은 떡잎과 같다/ 이게 시간이다'
'새들아, 산 하늘들아/ 나무야, 하늘의 숨결아/ 너희의 깃을 나는 사랑하고/ 너희의 가지들을 나는 한 없이 / 사랑하거니와/그리고/그리고 말이다/ 나는 언제나 너희 깃 속에 깃들여/ 나는 언제나 너희 가지에 깃들여/ 너희의 성장과 비약에 합류/너희의 그 아무도 몰라 이쁘고 이쁜 꿈에 합류하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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