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바다가는길 2006. 4. 15. 17:41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틱낫한 저/박윤정 역 / 명진출판

 

스님의 글은 언제나 참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하다.

'화' 나 '힘'같은 수필집과 달리 법화경이라는 경전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에 좀 더 집약된 글들이라는 느낌이다.

법화경이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으로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져 소승과 대승을 어떻게 결합시키며,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 그 내용을 어떻게 구체화 할 수 있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결국 모두가 불성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모두가 이미 부처이며, 부처와 여러 보살들을 찾아 복을 구하기보다 스스로가 부처, 보살이 되어 자신과 주변 모두를 이롭게 해야한다는 것.

그렇게 이해하기 쉬운 말들이 행하기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법화경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이되 막상 경전의 본문이 없다. 원문까지 같이 실려 대조하며 읽을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법화경과 함께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역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에 예속되어 있다. 태어나지만 결국은 죽고, 시작과 끝을 거부할 수 없다. 어딘가에서 와서 어딘가로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차원이며, 우리는 모두 이 차원에 속해 있다. 석가모니 부처도 물론 역사적인 차원에 속해 있었다. 카필라국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었으며, 팔십 평생 법을 설했다.

하지만 모든 삼라만상은 시공간이나 탄생과 죽음, 오고 감의 개념에 예속되지 않는 실재의 차원, 즉 궁극의 차원에 속해 있기도 하다. 파도는 파도인 동시에 물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파도는 꼭 죽어야 물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속에서 파도는 이미 물인 것이다........역사적인 차원 속에서 파도의 삶을 살지만, 동시에 자신이 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고 물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수행의 본질이다. 오고 감도 존재도 비존재도, 탄생도 죽음도 없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고 나면 두려움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궁극의 차원 속에, 열반 속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부처가 그런 것처럼, 우리도 역사적인 차원에 살면서 동시에 궁극의 차원 속에 머물 수 있다.'

 

'가을에 걷기 명상을 하다가, 붉은 낙엽을 주웠다고 하자. 이 낙엽의 궁극적인 차원을, 이 낙엽을 만들어낸 우주의 모든 현상-별과 달, 태양, 구름과 비, 강과 흙 등-을 이해하면, 이 작은 낙엽도 우주만큼이나 귀한 보물이 된다......이런 식으로 모든 것의 궁극적인 차원을 통찰하면, 그것들 속에 한없이 귀중한 본성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역사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잎은 초봄 어느 나뭇가지에서 연녹색의 새순으로 돋아났다가 여러 달 동안 그 가지에 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어느 날 찬바람에 땅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뭇잎의 궁극적인 차원을 깊이 통찰하면, 그것이 단지 가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태어나 얼마간 존재하다가, 늙어 죽어버리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다른 나뭇가지 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그 잎은 사실 우리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서로 숨바꼭질을 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들을 깊이 통찰하고, 그들의 진정한 본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스승을, 부모를, 자식을,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이들 중에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깊은 슬픔에 젖는다. 그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도 잃어버린 게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본성은 태어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궁극의 차원과 접촉하면, 그 황금빛 나뭇잎 앞에서 미소를 머금었듯,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미소로 맞아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이 사바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를 터득하면 마음도 더욱 편안해지고, 삶을 꼭 성취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굳이 계획을 세우거나 서두를 필요도 없어진다. 어떤 일이든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임할 뿐,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연연해하지 않는다....어떤 일이든 일정한 성공을 거두거나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쁘게 행할 수 있다.'

 

'우리는 행위와 행위 없음을 다른 것으로 본다. 때문에 끊임없이 행위를 재촉한다. 하지만 존재 상태가 안 좋을 때, 다시 말해서 마음의 평화와 이해, 포용성이 부족하거나 화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으면,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을 뿐더러 해를 줄 수도 있다. 행위의 질은 전적으로 존재의 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행위는 존재의 토대 위에서 생겨나고, 행위가 없어도 존재는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평정과 주의집중, 충분한 현존 속에 머무는 존재 상태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행위이다..........."나의 법은 행위 없는 행위를 하고, 수행 없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사십이장경>의 이 구절은 외적인 형상에 갇혀 행위 없음과 행위, 즉 존재와 행위를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일을 이루려 애쓰지만, 행위를 할수록 그들의 가족과 사회, 세계는 더 많은 곤란에 빠져든다. 존재의 토대가 아직 충분하게 안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번 반대로 해보자. 아무것도,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명상과 주의집중 수행을 통해 존재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생기 있게 현존하기만 해도, 모든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의집중을 통해 우리의 통찰과 연민, 이해를 높이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행 없는 수행, 성취 없는 성취, 행위 없는 행위이다. 존재의 질을 향상시켜 스스로 기쁨과 평화를 얻으면 가족과 사회, 세계에 이를 전할 수 있다.'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는 항상 사랑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 관세음보살의 사랑과 연민을 직접 체현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꾸준히 생각하면 그 힘으로" 모든 위험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상황을 파악하고 지혜롭게 행동하며 적절히 대응하게 해주는 열쇠,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판단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게 해주는 열쇠는 바로 주의집중이라는 말이다.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랑에 주의를 집중하면, 정신이 맑게 깨어나고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 명료한 의식과 자비의 마음이 보호막처럼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준다.

흔히들 위험은 밖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위험의 대부분은 우리 내면에서 생겨난다. 명료한 의식이 없으면, 우리의 두려움과 오해가 위험한 상황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번뇌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독이며, 이 삼독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방법은 사랑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사랑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 즉시 고통을 멈추고 삼독의 불길에서 헤어날 수 있다.'

 

'계율을 따르는 데 엄청난 투쟁과 노력, 자책, 엄격함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다. 올바른  선택을 하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의 깊고 따스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 내면의 이해와 사랑뿐이다.'

 

'마음이 크게 열려 있으면 날카로운 것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전혀 괴롭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불쾌하게 여기거나, 폐가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좁기 때문이다. 마음이 넓으면 날카롭고 곤란한 것도 아무 상처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인욕이란 고통을 불러들이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실제로 인욕은 마음이 좁아서 경험하는 고통을 피하게 해준다. 마음이 넓으면 고통도 없다.

부처는 아주 아름다운 예로 이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소슴 한 줌을 물 한 대접에 넣고 휘저었다고 치자. 그 물은 너무 짜서 마시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같은 양의 소금을 강물 속에 넣으면, 강물은 전혀 짜지지 않는다. 덕분에 그 강물은 계속 마실 수 있다. 요컨대 내가 한 대접의 물 밖에 안되면 고통을 경험하지만, 내가 강물이 되면 더 이상 고통도 없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좁으면, 더위나 추위, 홍수, 박테리아, 병 , 늙음, 죽음, 고집스럽고 잔인한 사람들 등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고난 속에서 깊은 고통을 경험한다. 하지만 크샨티를 닦으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그러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도록 마음을 크게 넓혀가는 것이 크샨티를 완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곧 사랑의 힘, 사랑의 기적이다.'

 

'개념만으로는 해탈을 성취할 수 없다. 해탈에 대해서 어떤 말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진정한 통찰이 없으면 우리의 삶과 세계 속에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깊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통해 무상과 무아의 개념을 진정한 통찰의 불꽃으로 변화시키면, 이 불꽃이 매 순간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추어줄 것이다. 그러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법화경은 전문가들을 위한 학문적인 경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살게 해주는 실용적인 지침서이다. 법화경의 핵심 가르침, 대승이 제시하는 보살의 도는 우리 모두가 보살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화경과 법화경이 주는 통찰을 바탕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육바라밀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리를 하거나 냄비를 닦거나, 법당을 청소하거나 일을 하러 가는 것 모두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 발짝이라도 주의 깊은 삶의 방식에 발을 내디디면, 지구의 모든 존재에게 도움이 되는 주의집중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행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들의 변화를 돕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이 모든 생명과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위대한 보살들의 행을 따르면, 사랑과 연민의 마음, 집중과 통찰력이 자라나 몸과 말, 마음의 모든 행위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할 수 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 자의 길-마루야마 겐지  (0) 2006.04.18
정신의 탐험가들-츠바이크  (0) 2006.04.17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장석남  (0) 2006.04.05
에라스무스-츠바이크  (0) 2006.04.05
플레이아데스의 사명  (0) 200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