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머, 메리베이커 에디, 프로이드, 세 심리학의 선구자들의 전기.
늘 그렇듯 츠바이크의 인물묘사, 상황묘사는 너무도 생생해 내가 바로 그 시대에 그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고있는 것 같다.
그는 편견을 지니거나 맹목에 빠지지않는 대단히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편집자주를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메리베이커 에디의 경우, 악의적으로 쓰여진 그녀의 전기를 참조했기에 츠바이크도 그녀을 굉장히 악의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지만, 후대에 새로 알려진 사실에 의해 그녀는 재평가되고 있다고 하고...
그렇게 그녀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지녔음에도, 그녀가 미친 대중적 영향력으로 보아 남다른 어떤 능력이 있었음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걸 보면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쓴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객관적 묘사보다는, 먼저 자신 안에 그려진 홀로그램같은 전체상에 의거해 그 인물들을 재창조해낸 것 같다.
사실들에 의거하긴 했으나 작가자신의 관점에 의해 재창조되었기에 어쩌면 그가 쓴 전기들이 그토록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1700년대, 1800년대, 1900년대, 각기 한 세기를 대표할만한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들.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깊은 결속감'을 느꼈던 사람들을 골라 전기를 썼다.
읽어보면 만일 그 시대에 지금처럼 동, 서양의 교류가 활발했더라면 훨씬 발전적 결과를 낳았겠다싶은 부분들이 있다.
매스머가 발견한 최면요법과 그가 가진 치료능력은 동양의 기공과 거의 흡사하고, 메리베이커 에디의 '완전론', 애초에 병이란 없다, 병이라고 느끼는 건 인간의 오류이며 착각일뿐, 인간은 원래 건강하고 완전하다는 사상은 불교적 관점과도 맥락이 통하는 것 같다.
오늘 날의 심리학, 정신분석학, 너무 보편화되고 당연시되는 그것들도 그 옛날 불모상태에서 누군가의 노력과 탐구에 의해 싹이 트고 키워져 오늘날에 이른 것임을 알겠다.
'학문적인 의학에서 환자는 대상으로 '취급'되는데 반해, 영적인 치료법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영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가 '주체'로서, 치료의 주체가 되어서 질병에 대항하여 그 자신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동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영적으로 일어나고, 의지를 통일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자기존재 전체를 다해서 질병에 대항하라는 호소, 이것이야말로 심리치료의 유일한 약이다'
'언제나 한 인간이 자신의 내적 신념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세계의 통합된 힘에 맞서 일어서서, 승리의 전망이 전혀없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싸움을 시작하면, 그의 영혼의 힘이 창조적으로 거기 합세하여 무에서 측량할 수 없는 힘을 만들어낸다.'
'모든 역학은 마지막에는 운동의 최종법칙에 대해서 묻고, 모든 개체는 마지막에 통합에 대해서 물으며, 모든 합리적인 것은 언제나 비합리적인 것 안으로 통합된다.'
'우리의 심리적 삶은, 의식적 의지와 뮈의식적 의지, 책임있는 행동과 충동의 무책임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절대로 끝나지않는, 비장하고 끈질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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