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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알렌식 코미디, 그보단 수다가 덜하지만...
수많은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들 중에 굳이 그 에피소드들을 고른 이유는 뭘지...
격자무늬의 커피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들은 격자무늬의 흑과 백처럼 따로 놀고 어긋나기 일쑤다.
사람들 사이의 그 아귀틀어짐, 소통되지 않는 간격을 검은 커피와 하얀 담배가 메꾼다.
11개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마지막 에피소드.
진작에 퇴직하여 편한 노후를 보내도 좋을 나이의 두 노동자 할아버지가 10분간의 커피브레이크를 갖는다.
말러든가, 브람스든가...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도 못한다며 낭만파 할아버지가 머리속으로 떠올리는 멜로디는 다른 할아버지의 머리 속에서도 함께 울린다.
낭만파 할아버지는 맛없는 싸구려 커피를 소위 '클래스' 있는 사람들만 마신다는 샴페인이라고 상상하자고 하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인 그의 동료 할아버지는 뭐하러 그런 상상을 해야하느냐고, 노동자의 싸구려 커피도 좋다고 말한다.
낭만파 할아버지는 아마도 평생 한 번 가보지도 못했을 1920년대의 파리를 위해서 건배를 제안하고, 합리파 할아버지는 1970년대의 뉴욕을 위해 건배한다.
여기가 어딘지, 점심은 먹었었던지 깜박 깜박 잊는 낭만파 할아버지는 이내 달콤한 오수에 빠지고, 10분간의 휴식 중 2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를 깨우길 그만두고 합리파 할아버지는 말없이 낭만파 할아버지의 잠을 지킨다.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짤막짤막한 재미있는 엽편소설집을 읽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