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속으로-존크라카우어

바다가는길 2006. 2. 7. 18:19

희박한 공기 속으로존 크라카우어 저/김훈 역 | 황금가지

 

 

In to Thin Air.

 

존 크라카우어. 한 잡지사의 의뢰를 받아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끼어 산을 올랐던 사람.

예상치 못했던 폭풍으로 그 등반에서 몇 명은 죽고 몇 명은 동상으로 사지가 잘렸다.

그는 천우신조로 겨우 살아남아 그 충격을 벗어나고자 오히려 기억을 더듬어 그 사건을 책으로 써냈다.

1996년 5월, 에베레스트에서 있었던 일.

 

요즘은 아마 에베레스트는 웬만한 체력과 등산경력이 있으면, 아니 거기에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도전할 만한 곳이 돼있나보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 지금도 여전히 조금씩 더 높아지고 있는 산.

내가 알기론 산에 미친 몇 몇 아주 소수의 사람들, 긴 세월을 통해 힘과 경험을 쌓아온 전문 산악인, 베테랑들만이 겨우 도전해 볼 수 있는 곳, 그들도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야 겨우겨우 천신만고끝에 정상을 밟아볼 수 있는 곳.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요즘엔 외국엔 사설여행가이드회사가 생겨 에베레스트를 여러 번 오른 경력이 있는 전문등산인이 가이드가 되어 필요한 모든 수속, 준비를 대행해주고, 물자를 조달해주고, 셀파를 동원해 정상까지 등산로를 뚫어주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정상까지 위험한 곳마다 밧줄이 설치되어 거기에 자신을 연결해 올라갈 수 있게 돼있나보다.

클라이언트들은 일인당 6500불만 내면 그냥 이끌어 주는대로 따라 꿈의 공간,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가볼 수 있나보다.

그래서 책에 의하면 등산 시즌엔 등반 중간 중간 정체현상까지 벌어져, 마치 울산바위 철계단 오르듯,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 맞부딪쳐 한동안 옆으로 비켜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내주기도 해야 하나보다.

에베레스트, 세계 최고봉, 그 꼭대기에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는 건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일인데.

그렇다고 물로 거기가 돈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8848M(?). 항공기가 나는 고도.

몇 주에 걸쳐 조금 조금씩 높은 고도에 신체를 적응시켜도 고도때문에 오는 부작용으로 불면, 소화불량, 두통, 무기력증등 여러 고산증을 견뎌내야한다. 조금 심하면 폐수종등으로 의식불명, 사망상태에 빠지기도 다반사고.

참기 어려운 고통들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빙하들이 심연을 향해 쩍 쩍 입을 벌리고 있고,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그냥 허공인 가파른 능선길을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매고 헉헉대며 한, 두발 걷고 힘들어 쉬고, 다시 한 두발 떼는 일을 반복하며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 산을 오르는 일은 그냥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모두들 그것이 평생에 꼭 한 번 이루고 싶은 꿈이기에, 그 거대한 산, 그 신성함에 접해보고싶은 갈망이 있기에 하는 일이다.

고객들 대부분이 부유한 변호사, 의사, 재벌들이었지만 그 중엔 우체국 직원도 있었다.

에베레스트에 오를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낮엔 우체국에서 일하고 밤에도 쉴 새없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 사람. 기어코 꿈을 이루고, 기어코 거기서 죽은 사람.

또는 어떤 스웨덴인은 자전거 하나에 모든 짐을 싣고 대륙을 관통해 히말라야까지 오기도 한다.

이 책을 쓴 저자도 만만치않은 등반인으로서 에베레스트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기에 잡지사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 단번에 승낙을 하고 등반대를 따라 나선다.

 

그 스스로가 실제 산밑자락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과정을 경험했기에 책의 이야기들이 아주 사실적이고 현실감이 있다.

한,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티벳으로 날아가 낯선 사람들과 만나 일행이 되고,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내려올 때까지의 일들이 하루하루씩, 나중엔 시시각각의 상황으로 세세히 그려져있다.

모든 것이 순조로와 보였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난 등반.

아주 사소해보이는 작은 요소들이 모이고 또 모여 증폭되어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결정되는 것.

 

치밀하고 완벽주의자로 정평을 얻고있던 가이드대장, 이전에도 여러번 팀을 이끌고 에베레스트를 올랐었던 다경험자, 거금을 투자한 고객들이 아무리 버티고 항의해도 상황이 완전치않으면 정상이 코앞이라도 되돌아서는 안전제일주의자였던 그가 왠일인지 그 스스로 정했던 하산시간인 오후 1시, 늦어도 오후 2시엔 어떤 일이 있어도 산을 내려가야한다는 그 원칙을 부수고 오후 4시가 넘도록 하산을 하지않았다.

그 후로 갑자기 들이닥친 산꼭대기에서의 눈폭풍.

일행 중 몇몇은 정상을 오르지못하고도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혹은 몸상태가 안좋아 중도에서 뒤돌아 산을 내려왔고, 또 몇몇은 정상에 오른 후 그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부리나케 그 자리를 떠나, 하산길에 눈폭풍을 만났어도 제대로 길을 찾아 캠프로 돌아왔는데, 베테랑인 가이드대장들, 어떤 경우라도 조그만 위험요소도 허술히 여기지않을 그들, 정상이 10미터 앞이라도 하산을 해야한다면 과감히 뒤돌아설 결단력을 지닌 그들인데, 어떤 혼령이, 어떤 산의 신령이 그들을 유혹했길래 평상시와 달리 그렇게 늦게까지 산 위에 남아있었을까.

그러다 결국 눈폭풍을 만나 아무 것도 보이지않는 눈보라속에서, 어디 바람을 피할 바람막이 하나 없이 영하 5,60도의 강추위속에서, 그 세계의 꼭대기에서,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이, 홀로, 서서히 마비되어가는 몸의 감각과 점점 몽롱해져가는 정신을 느끼며 밤을 지새고 날을 보내며 스스로의 죽음을 골똘히 들여다봐야 했을까.

그들이 그 꼭대기에서 홀로 겪었을 그 시간들, 뼈를 에이는 추위, 바람, 눈보라, 어둠, 고독, 두려움, 공포, 절망...

어쩌면 그들은 언젠가 그런 식으로 죽을 거라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젊은 3,40대였던 그들.

 

히말라야에선 해마다 그렇게 몇십 명이 죽고, 오르내리는 등반길 군데군데에 저온의 기후에 썩지도 않는 시체들이 눈 속에 반쯤 파묻혀 드러나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산을 오르고, 또 오르길 열망한다.

고도에 의한 저산소증과 체력저하로, 죽어가는 일행을 바로 옆에 두어도 같이 죽어줄 각오가 아니라면 도와줄 여력도 없이 겨우 스스로의 살길만 재촉해야하는 처절한 상황. 살아남은 사람도 그 기억들을 떨쳐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

 

1996년 5월 십 몇일쯤, 히말라야 산꼭대기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외롭게 죽어갈 때쯤 나는 어디서 뭘하고 있었을까?

살아있다는 일, 살아가는 일, 여러 면에서 존 크라카우어가 경험한 에베레스트 등반과 많이 흡사한 것 같다. 결정적인 순간을 늘 혼자 감당해야한다는 외로움.

 

그런데 그는 혹시 아시안에 대한 편견을 갖고있는 건 아닐까.

우연히 그 책에 등장하는 모든 아시안들이 부정적으로 그려져있다.

같은 시기에 등반한 대만팀은 한없이 미숙한데 소란스럽기만하고, 팀원 중 한 명이 사고로 죽어도 거기에 대해 아무런 조의표시도 없이 등반을 계속하는걸로 그려지고, 또 다른 루트를 택한 인도등반대는 악천후에도 무모하게 등반을 강행하다 몇 명이 조난되고, 그 뒤를 이어 산을 오른 일본 등반대는 조난되어 죽어가는 인도인들 옆을 지나면서도 정상을 오르는 일에 지장이 있을까봐 전혀 도움을 주지않은 채 그들을 방치한 걸로 돼있다.

또 몇몇 현지인 셀파들은 늘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지않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어려움에 빠진 고객들을 팽개치고 자기들만 서둘어 하산을 하고...

거기서 그가 만난 모든 아시안들이 우연히 모두 그렇게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한 건지, 아니면 저자가 서구인이 아닌 인종들에 대한 편견때문에 그들 나름의 어떤 상황들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지.

 

어쨌든 책은 마치 내가 그 시간을 함께 겪는 듯 서술이 생생했다.

 

그 비극속에서 살아나온 사람들, 그들에게 다시 에베레스트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거길 또 한 번 갈까, 아니면 에베레스트는 그들에게 영원한 악몽으로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