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저. 열림원.
책이 출간된 해를 보니 2011년 3월.
법정스님 입적 1주기를 맞아 출간됐다니, 지금은 2016년 3월, 돌아가신지 벌써 6년이 지났다는 얘긴가.
어느 새...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고도 이상하게 잘 아는 사람처럼 친밀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떴다는 보도를 보고 마치 내 친한 지인을 떠나보낸 것처럼 너무나 슬프고 서운한 마음일 때가 있다.
법정스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돌아가셨다지만 어쩐지 여기 어디에, 강원도 오두막이나 어디에 같은 하늘을 이고 여전히 계실 것만 같은 기분.
저자는 스님과 필자와 잡지사 편집자로 만나 인연을 이어오며 스님께 법명까지 받을 정도로 가까이 지냈던 사람.
글로만 스님을 접한 나도 그런데 실제 그렇게 친했던 사람이니 스님의 부재가 얼마나 허전할까.
그 마음을 담아 스님이 세상을 살았던 족적을 따라 그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그 장소들에서의 스님의 모습과 저자가 가까이 접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글로 펼쳤다.
해남 우수영의 생가를 찾아가고,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던 쌍계사, 돌아나오는데 전생에 그 절의 중이었는지 떠나오기가 그렇게 섭섭했더라는 에피소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어려운 형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하필 인쇄소였다고, 글과 인연이 닿을 운명이었나보다는 이야기, 대학 때 만행하던 두 스님을 만나 그들의 청정한 기개에 감화된 이야기.
그리고 효봉스님을 스승으로 행자생활을 시작한 미래사 효봉암.
둘은 서로 너무나 맘에 드는 스승, 제자였을 것 같다.
스님은 항상 간소한 생활을 할 것을 주장하셨고, 같은 물건이 두 개가 생기면 하나는 다른 사람을 주고, 우물가에서 국수를 씻다 흘러나간 몇 가락을 다시 헹구어 드시고, 먹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없다고 일식삼찬을 하시는 등 항상 검소하셨는데, 스승인 효봉스님은 초를 켤 때 흐르는 촛농을 버리지않고 긁어 모아 거기에 심지를 꽂아 다시 쓰고, 신발 뒷축이 한 쪽으로만 닳자 오른쪽 왼쪽을 바꿔 신어 두 배로 늘려신었다니 그 스승에서 그 제자가 나왔겠다.
그리고 효봉스님의 시자생활을 했던 쌍계사 탑전, 학승으로 있었던 해인사, 졸업하고 구족계를 받은 후 머물면서 그때부터 불교사전 편찬을 돕고, 선가귀감을 번역하고, 여러 곳에 글을 기고하며 문재를 드러내는 이야기.
특히 뜻밖인 건 삼성동 봉은사에도 몇 년간 계셨다는 것. 거기서 바로 '무소유'를 썼다고.
그 후 번잡한 도시를 떠나 송광사 불일암에서 17년을 계시다가 마지막까지 계신 곳은 강원도의 오두막, '수류산방' 여기서도 17년을 머무셨구나
수류화개. 믈은 흐르고 꽃은 핀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여하다는 경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으로 문패를 삼고.
또 그 사이 기증받은 대원각을 길상사로 환골탈태시키고...
수행자로서의 스님이야 글이나 방송을 통해 그 꼬장꼬장한, 풀 빳빳히 먹인 삼베같이 칼칼한 모습을 많이 접해 얼마나 철저한 수행자였을지 짐작할 수 있는 바여서 그보단 소소한 스님의 모습들, 행자시절 장에 나가 소설책을 사왔다가 스승께 혼났다던가, 음악을 좋아해 음악감상실에 다니셨다든가,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고, 달구경을 하고 가라고 지인을 붙잡고,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만한 명성과 인기를 얻으면서도 본 모습을 하나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는 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텐데, 끝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가셨으니...
그렇게 활발히 글을 쓰고 강연을 하셨으면서도 이런 저런 활동으로 모인 돈을 일정액이 모이면 항상 어려운 학생들에게 본인을 밝히지않고 몰래 장학금으로 지급하셨다고, 그래서 말년에 병원에 계실 때는 병원비가 없어 독지가의 도움을 받았야 했을 정도고, 글빚을 남기기 싫다고 자신의 글들을 절판할 것을 명하고. (아마도 인세때문에 벌어질 다툼을 예견하셨기 때문이 아닐지.)
한편으로 대쪽같으면서도 참으로 청초한 삶을 사셨다는 생각.
책은 스님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참 흥미롭게 그려져있고, 군데군데 법정스님이 머문 곳들의 사진들이 잘 실려있어, 아, 이런 곳이구나 실감하며 편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점점 혼탁해져가는 세상, 뉴스를 보기가 두려운 세상속에 살며 오랜만에 책을 통해 법정스님을 되새겨보니, 마치 매연속을 돌아다니다가 맑은 샘물 한 모금 얻어마신 것 같은 느낌이다.
"삶에 공식이 있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다 다른 거지요.나의 경우 제 일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 것인가'예요. 우리는 문명의 이로운 기계로 인해 혜택도 받지만 많은 것을 잃고 있어요. 편리하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점점 해체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조직의 노예가 되고, 관계의 노예가 되는 거지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하고 간소해져야 해요. 단순하고 간소하게 산다는 것은 본질적인 삶을 산다는 말이지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위해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五觀偈)
"눈 부신 봄날입니다. 다시 만나 다행입니다. 언젠가 내가 이 자리를 비우게 될 것입니다...... 연등이 너무 많이 걸려 있어 꽃과 잎을 볼 수 없습니다. 저마다 독특한 기량을 뽐내는 꽃이 피기 때문에 비로서 봄인 것이지 봄이라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닙니다....... 꽃이 피지 않는다면 봄 또한 아닙니다....... 여름 날씨가 봄에 오고 봄에 눈이 오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꽃은 우연히 피는 게 아니라 모진 추위와 더위, 혹심한 가뭄과 장마를 꿋꿋이 버틴 나무와 풀만이 시절 인연을 만나 인고의 세월을 배후에 두고 한 송이 꽃과 잎을 피웁니다. 이와 같은 꽃을 보고 우리 자신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승가의 생명력은 청정성과 진실성에 있습니다....... 스님, 신도,오가는 불자들의 삶이 저마다 맑고 향기로운 정진의 힘으로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절 이전에 수행이 있었던 만큼 절을 습관적으로 다닐 게 아니라 왜 가는지 스스로 묻고 의지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진정한 도량은 눈에 보이는 건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삶이 맑고 향기롭게 개선돼야 하며 도량다운 도량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눈부신 봄날, 새로 피어난 꽃과 잎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 각자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고 견디면서 가꾸어온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보기 바랍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난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기 바랍니다.
-길상사 법문.
"나도 없는데 하물며 내 것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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