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리고 기억함

공주 갑사, 공산산성, 마곡사

바다가는길 2024. 4. 13. 19:08

 

신록이 한창인데, 조금만 지나면 더워서 못돌아다닐텐데 그 전에 어디를 가볼까? 

여행사 몇군데를 찜해놓고 가끔씩 들어가 프로그램을 살피는 게 어느 새 버릇이 됐다.

그 중 눈에 띈 곳. 공주는 한번도 못가봤는데, 게다가 절이니 산책하듯 어렵지않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니 바람 쐬러 나가보자.

부모님 모시고 다녀올만한지 사전답사차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해서 나이드신 분들껜 어렵겠더라.

 

공주의 금강. 고요하고 왠지 얌전한 느낌.

갑사 입구 주차장에서 보이는 풍경. 멀리 보이는 계룡산. 산세가 제법 이쁘다. 언제 계룡산 한 번 가볼까?

입구 계곡에 꽃나무 흐드러지고..

서울식당. 야외 테이블들이 멋졌다. 시간이 일러 다른 식당들은 식사준비가 안돼 들어간 곳인데, 야외 테이블들을 이렇게 잘 장만해놓고 막상 음식맛이 별로여서 유감. 산채비빔밥은 맛없기 힘든데 나물들이 조화가 안돼 그냥저냥 먹었다. 다른 메뉴들은 어떨지 모르지. 게다가 물주전자, 휴지통같은 집기들 위에 먼지가 뽀얗게, 생전 닦지않는 것 같이 더러워 또 유감.

하지만 그저 그런 비빔밥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산들 부는 바람 맞으며 흩날리는 꽃잎 바라보며 먹자니 분위기 굳.

갑사 들어서기 전 조성돼있는 작은 정원. 수국정원이라 써있었던 것 같은데..

산등성이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한아름 꽃다발 같은 나무들.

 

- 갑사는 공주시 계룡산국립공원 내 계룡산 북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던 명찰이다.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예로부터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자랑한다. 백제 구이신왕 원년인 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이 이 절의 시초이다. 갑사는 계룡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었으며, 그중 갑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甲)고 해서 갑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에서도 열외가 되고 오히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를 판각하기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소되다가 1604년(선조 37)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 덕분에 지금도 사찰 내부에 각종 귀중한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사천왕문 안으로 보이는호젓한 길이 절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초파일을 맞이해 색색연등이..

 

봉오리 몽글몽글한 벚나무가 장해 한 컷. 벚나무 아닌가? 살구나무인가?

초록 그늘 드리운 나무 아래 벤치. 소박한 모습이 오히려 좋다. 뒤쪽 계곡 물소리 들으며 마음 쉬기 좋겠다.

본채들 옆 오솔길을 내려가니 나오는 호젓한 공간. 여기 요사채였던가?

여행의 주제, 갑사 황매화. 이거 말고 다섯장의 꽃잎을 가진 모습이 매화를 닮아 황매화라 한다는 또다른 꽃을 뭉뜽그려 황매화라 하나보다. 집에 돌아와보니 우리 동네에 더 많이 피어있네 ㅎㅎ. 태양을 닮은 노란 빛이 마음을 환하게한다.

 

 

-보물 제256호 갑사 철당간 및 지주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8개를 연결하였던 것이나, 고종 35년(1899) 폭풍우에 벼락을 맞아 4절이 부러졌다고 하며 현재는 24절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때라면 전기든 중기든 천여년 전이라는 건데, 그 시대에 이런 철주조물을 세웠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게다가 당간은 깃발을 달기 위한 장대인데 이렇게 높은 장대에 달릴 깃발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크기였을지.. 실제로 보면 꽤나 높다.

 

 갑사는 전들도 많고 잘 가꾸어져 화려하고 계곡을 따라 산책로도 잘 조성돼있었지만 갑사구곡이 유명하다는데 하류라서인가 계곡이 왠지 물이 깨끗하지 않아 유감이었다.

 

 

 

 

-공산성은 웅진기 백제의 왕성(王城)이자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적이다.  백제 때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985년과 1986년에는 추정 왕궁지에 대한 시 ·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뒤이어 백제 때 축조된 토성벽과 통일신라 때 조성된 28칸 건물지, 그리고 광복루 주변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서서도 12각 건물지를 조사하는 등 대체로 공산성 내 동쪽 산봉(山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2005년에 성안마을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성안마을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성안마을에 중군영지(中軍營址)를 포함한 조선시대 유적이 자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부터는 조선시대층을 제거하고 그 아래쪽에 자리하는 백제 유적을 본격적으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2016년까지 다양한 백제 유적과 통일신라 유적이 확인되었다. 그중 2011년에는 작은 연못 안에서 옻칠 갑옷과 철 찰갑이 각각 1령씩 출토되었으며, 마갑(馬甲)과 각종의 마구도 다양하게 출토되어 공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공산성의 인상은 참 잘 정돈되고 관리돼있다는 느낌. 성곽을 올라 빙 한바퀴를 돌수도 있고, 언덕을 이룬 성 내부도 마치 공원처럼 단정해서 산책하듯 거닐기도 좋았다. 백제때의 성이라니 이런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돼고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

조선시대 때 개축됐다는 이 석벽은 얼마나 된 걸까? 그 때 그대로인 걸까? 일률적이지 않은 돌들을 아귀를 맞춰 쌓은 형태가 아름답다.

한껏 피어난 들꽃. 여행지라 이런 들꽃도 유감해.

 

 

 

 

-공주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慈藏)이 창건한 사찰이다. 마곡사라는 이름은 신라의 보철화상이 설법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있다. 그 외 오층석탑, 괘불 1폭, 목패, 조선 세조가 탔던 연, 청동향로, 고서적들이 있다. 고려 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인 금물과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도 여러 점 전해진다. 마곡사 일대는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6.25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선정되었으며 사찰 내 여러 문화재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갑사는 시주를 많이 받아 새 전각을 여럿 지어 오히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했지만 마곡사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까닭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고.

고색창연한 절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갑사가 마곡사의 말사다.

마곡사는 계곡을 따라 제법 긴 길을 걸어들어가야 한다. 그 긴 길이 오히려 절에 간다는 마음을 깊게 했다.

길게 걸린 연등들이 곱다.

 

기와를 쌓아 만든 담장이 예뻤다.

꽃 무더기 피어난 곳에 정성스레 쌓은 돌탑이 예뻐서.. 탑은 쌓였다 무너지고 쌓였다 무너지고..

최근 새로 만든 것 같은 사물각이 잘 꾸며져 있다. 예전에 송광사에서 참 인상 깊게 사물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예불 시간 기다려 다시 한 번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아마 템플스테이를 위한 듯한 집들. 심검당?  장식없이 소박한 모습이 고즈넉하더라.

단청이 벗겨지고 바랜 모습이 더 예스럽고 멋스럽다. 켜켜히 쌓인 공포며 아름다운 꽃창살문이 옛 영화를 보여준다. 

응진전 앞 자목련. 새빨간 꽃송이들에 와! 저거 뭐야? 너무 예뻐 눈이 번쩍 띄었다.

대웅전 앞에서 보는 정경.

마곡사 오층석탑. 고려 말기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설명을 읽고보니 탑 꼭대기의 부도같이 생긴 독특한 구조물, 풍마동이 보인다. 전면은 그래도 온전하나 후면은 많이 부서지고 마모됐더라.

 

마곡사는 신라때 절, 탑은 고려때 탑. 천년이 넘는 그 긴 긴 세월을 인간세를 바라보며 서있었을 연륜, 유장하게 흘러 온 그 시간들이 느껴졌다.

 

공주는 처음, 갑사, 마곡사도 처음인데 와보니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참 유서깊은 도시며 절들이네. 세월을 이기고 남아있는 문화유산들을 이렇게 살뜰히 보존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4월 초순인데 날씨는 이미 초여름처럼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녔지만 아직은 신록, 새로 나온 나무의 여리고 어린 잎들의 초록의 향연을 만끽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언제부터 이렇게 벗나무가 많았지?  벗나무는 어떻게 번식하나? 길 가 곳곳, 심지어 일부러 심었을 것 같지 않은 산등성이 곳곳마다 아직 봄이에요, 말하며 분홍빛 환한 꽃들을 피운 나무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