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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저 | 해냄 | 2020년 08월 "잘 잤어? 컨디션은 어때? 뿌리 내리기 좋으라고 2센티미터 정도만 남기고 물을 다 빼두긴 했지. 아직 여기가 낯설지? 모판에서 자랄 때와는 많이 다를 거야. 278종의 친구들과 함께 가을까지 무럭무럭 자라야 해. 다 같은 논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바람도, 햇볕도, 벌레소리도, 물의 온도도 제각각이라서 불편한 점도 있을 거야. 너희랑 이 논에서 지내는 동안 내 원칙은 간단해. 편애하지 않을게. 골고루 살피고 돌볼게. 너희가 자라고 열매 맺을 때까지, 내가 끼어드는 일은 거의 없을 거야. 전체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지. 극심한 가뭄이 든다거나 큰바람이 불어 목숨이 위태로울 땐 너희를 구하기 ..

2021.01.22

Jean Michel Othoniel-my way

오토니엘의 전시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봤다. 오토니엘? 전에 전시 한 번 봤었는데? 나쁘지 않았는데.. 블로그를 뒤져 다시 보려하니 아무리 찾아도 글이 없다.아마 그때 글을 올리지않았던 모양. 사진 폴더를 뒤지니 거기에 사진들이 그대로 있네. 이번 달 말까지 라는 전시,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있을까? 가게 될까? 우선 그때 못올린 지난 전시를 정리해보자. 벌써 10년 전의 전시, 사진을 보니 기억이 새롭다. 로댕갤러리였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2011.09.08-11.27. 삼성 plato. 이번 전시는 작가의 중간 회고전으로 1980년 대 초기작부터 최근 대규모 유리 설치작업까지 작가만의 폭넓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자전적 경험과 트라우마에 근거한 그의 작업은... 인간으..

미술 2021.01.11

첫 눈

첫 눈이 왔다. 다른 곳에 이미 첫 눈이 왔다지만 내게는 오늘이 첫 눈. 이유가 있어 기분이 나쁘고, 이유없이도 기분이 나쁜 나날들. 오늘 아침은 왠지 기분이 괜찮네... 하며 커튼을 열었더니 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느껴낸 눈. 아침 길을 나서니, 이미 새하얘진 세상, 폭신 폭신 발 밑으로 느껴지는 눈의 감촉, 받쳐든 우산 위로 싸르락 싸르락 눈 내리는 소리,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일없이 버스를 한 대, 두 대를 그냥 보내며 허공을 가득 채운 눈, 한 송이 한 송이 내리면서 그 한 송이 한 송이씩 만큼의 공간을 중첩시키며 무한히 확장하는 눈세상을 한참 바라보았다. 종일 내릴 듯하던 눈은 금새 그치고 그다지 춥지않은 날씨에 그..

오늘 하루 만이라도

문학과지성 시인선-548 황동규 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26일 불빛 한 점 한창때 그대의 시는 그대의 앞길 밝혀주던 횃불이었어.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없던 길 내고, 그대를 가게 했지. 그대가 길어었어. 60년이 바람처럼 오고 갔다. 이제 그대의 눈 어둑어둑, 도로 표지판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표지판들이 일 없인 들어오지 말라고 말리게끔 되었어. 이제 그대의 시는 안개에 갇혀 출항 못 하는 조그만 배 선장실의 불빛이 되었군. 그래도 어둠보단 낫다고 선장이 켜놓고 내린, 같이 발 묶인 그만그만한 배들을 내다보는 불빛. 어느 배에선가 나도! 하고 불이 하나 켜진다. 반갑다. 끄지 마시라. 진한 노을 태안 앞바다를 꽉 채운 노을, 진하고 진하다. 몸 놀리고 싶어 하는 섬들과 일렁이려는 ..

2020.12.11

퀘이사2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별. 지구의 공전때문인가? 뜨는 시간이 바뀌었다. 어느 날, 어둠이 채 가시지않은 새벽, 문득 커튼을 열었더니 거기, 처음 봤을 때의 형형함은 아니지만 여전히 홀로 밝은 별 하나가 있었다. 어? 너! 그게 퀘이사인지, 새벽에도 밝은 금성인지, 어떤 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가워. 적어도 별을 마주하는 동안 내 시야는 별이 있는 저기 높은 곳까지 열리고, 거길 넘어 그 빛이 출발했을 먼 먼 우주 너머를 상상한다. 한없이 작고 보잘것 없는 주제에 우주라는 거대함을 상상하고 탐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인간'임이 모처럼 고마운 순간.

풀에게

풀에게 시멘트 계단 틈새에 풀 한 포기 자라고 있다 영양실조의 작은 풀대엔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맺혀 살랑거린다 비좁은 어둠 속으로 간신히 뿌리를 뻗어 연약한 몸 지탱하고 세우는데 가끔 무심한 구두 끝이 밟고 지날 때마다 풀대는 한 번씩 소스라쳐 몸져눕는다 발소리는 왔다가 황급히 사라지는데 시멘트 바닥을 짚고서 일어서면서 그 뒷모습을 본다 그리 짧지 않은 하루해가 저물면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별빛을 받아 숨결을 고르고 때로는 촉촉이 묻어오는 이슬에 몸을 씻는다 그 생애가 길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말없이 살랑거린다 문효치(1943~)

그렇지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오랜만, 마루야마 겐지. 얼마 전 우연히 마루야마 겐지의 신간, '파랑새의 밤'이 눈에 띄어 읽으면서, '마루야마 겐지, 살아있네...^^' 하며 새삼 그라는 작가의 존재를 기억해냈었다. 그의 소설, 에세이들, '물의 가족'이니 '달에 울다'니 '산자의 길'이니를 한창 읽은 후 그를 잊은지 오래다. 파랑새의 밤을 읽고 그간 그의 어떤 책들이 있었나 궁금해 검색해보다가 제목에 반해 읽게 된 책. '그렇지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와!, 읽어주자. 이야기는 정원사 마루야마 겐지가 일본의 북알프스라 불리는 아름다운 산골에서 350여평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야기. 희안하게도 그의 글은 문체는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데 반해 내용은 두터운 물감을 턱턱 이겨붙이는 유화처럼 강렬했었는데, (파랑새..

2020.12.02

[쇼팽 탄생 210주년] 오마주 투 쇼팽

쇼팽의 에튀드, 발라드, 녹턴, 스케르초... 와! 끝내주는 레퍼토리, 쇼팽에 푹 빠져볼 수 있겠네.. 예매했던 공연이 그간 코로나때문에 여러번 취소됐었다. 그 중 랑랑의 공연도 취소. 랑랑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었지만, 공연 프로그램이 바흐의 골드베르그변주곡. 유투브에서 들어보니 그도 나이가 들어서인가, 예전의 왠지 기량만 뽐내는 듯한 시끄러움이 가라앉아 진중한 느낌. 표를 예매하고 그 음악 들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롯데콘서트홀의 '오마주 투 쇼팽'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한 연주자가 여러 작곡가의 여러 스타일을 넘나드는 레퍼토리로 프로그램을 짜면 연주회가 뭔가 부산스러운 느낌인데, 희안하게 한 작곡가의 곡들을 여러 연주자가 연주하니 그것도 왠지 부산스럽게 느껴지더라. 연주가 좋았을 경..

음악 2020.11.23

퀘이사

---퀘이사( Quasar, Quasi-stellar Object, QSO, 준항성체)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이다. 퀘이사의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10억 배나 되는 매우 무거운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고 그 주위에는 원반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원반의 물질은 회전하면서 블랙홀로 떨어지고 있고 이때 물질의 중력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바뀌면서 거대한 양의 빛이 나온다. 퀘이사는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천체로, 강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동은하이다.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데도 마치 별처럼 밝게 보이는 은하이다. 블랙홀 이론으로 퀘이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냈고 20세기 최고의 지식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발견 당시에 은하처럼 넓게 퍼져 보이는 천체가 ..

천재 해커 출신 대만 디지털 장관 "내 일은 국민 목소리를 듣는 것"

날고 긴다는 MIT 미디어랩에도 전설처럼 전해 오는 뼈아픈 실패담이 있다. 3년 전 연수 때 여러 차례 들은 '모든 어린이에게 컴퓨터 한 대씩'이란 프로젝트다. 미디어랩을 세운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주도해 2005년 시작했다가 2014년에 사실상 접었다. 발상은 그럴싸했다. '저개발국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보급해 디지털 인재로 자라게 하자.' 실패했다. 저개발국 아이들은 컴퓨터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었다. 알렉시스 호프 미디어랩 연구원의 얘기다. "사용자 의견을 미리 들었어야 했다. 이들은 컴퓨터보다 식수·백신을 원했다. '컴퓨터가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발상은 배부른 미국인들의 허세일 뿐이었다." 얼마 전 인터뷰한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천재 해..